항목 ID | GC042018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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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魚大成 |
영어음역 | Eo Daeseong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영주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차철욱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출신의 경제인이자 사회 운동가, 교육 활동가.
[활동 사항]
어대성(魚大成)은 1877년 4월 6일 동래부 관속으로 있던 어성우(魚性愚)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서당에서 한학을 배웠고, 동래의 담뱃대 만드는 기술을 익혀 공장을 차렸다. 1898년부터 1908년까지 순검(巡檢)으로 활동하다 그만두고 중구 영주동에서 전당포를 열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경기를 타고 축재하여 해산물 객주업자로 성장하였다.
1924~1925년 무렵 당시 부산의 조선인 해산물 객주들로 조직된 부산위탁조합에 가입금 인하를 요구하며 부산위탁조합혁신기성회를 조직하였다. 부산증권주식회사 대주주와 경남인쇄주식회사[1916년 5월 25일 설립] 이사로 활동한 데 이어 1920년대 부산의 근대적 기업의 설립과 운영에도 참여하여, 부산신탄주식회사[1920년 5월 2일 설립] 감사, 삼산자동차주식회사[1920년 5월 4일 설립]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어대성은 교육 운동과 대중 계몽 운동에도 노력하였다. 1922년 이규직(李圭直)과 함께 조직한 영주동 청년친목계를 통해 육영의숙을 설립하였고, 부산의 객주들과 함께 부산공립보통학교 부형회를 조직하였다. 1923년 부산진 좌천동에 있던 일신여학교가 동래읍으로 이전하여 조선인 여학교가 없자 부산도립여자고등보통학교 기성회를 조직하였다. 1927년에 여자 고등학교 설립 문제로 부민 대회를 개최하고, 그 결과 1927년 2월 부산공립여자고등보통학교의 개교를 실현하였다. 이와 같은 교육계에서의 활동으로 1924년 부산청년회를 비롯한 각 단체의 요구로 부산부 학교평의원 후보로 추천받기도 하였다.
어대성은 부산상업회의소 상의원[1924~1926]과 특별 의원[1926~1934년], 부산부 협의회 회원[1926~1931년], 부산부회 의원[1931~1935년], 관선 경상남도 의원[1927~1929년] 등 경제계와 정치계에서도 적극 활동하였다. 부산부회 의원으로 있던 1934년 조선인 거주 지역에 위생, 도로, 상하수도 시설, 궁민 구제 사업 등을 부산부에서 지원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시 조선인 의원 9명과 함께 총사직하기도 하였다. 부산상공회의소 특별 의원으로 1934년 대만 시찰을 마치고 귀국 후 병을 얻어 10월 30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