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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린수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855
한자 交隣須知
영어음역 Gyorinsuji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62[초읍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손승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술 시기/일시 1703년연표보기 - 교린수지 저술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03~1705년 - 아메노모리 호슈가 부산에 유학하여 참판사의 도선주와 재판(裁判)으로 조선을 왕래함
특기 사항 시기/일시 1711년 - 아메노모리 호슈가 쓰시마 번의 진문역으로 통신사 일행을 에도까지 수행함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12월 7일연표보기 - 교린수지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교린수지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소장처 부산광역시립도서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62[초읍동]
성격 고도서
저자 아메노모리 호슈
권책 4권 4책
규격 26×18.5㎝|21×14㎝[내변]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조선 후기 부산에 왔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가 지은 조선어 학습서.

[저자]

아메노모리 호슈[1668~1755]의 자는 백양(伯陽)으로, 통칭 동오랑(東五郞)으로 불린다. 아메노모리 호슈는 1668년 일본 오우미[近江] 이카[伊香] 아메노모리[현재의 사가[滋賀] 현 타가츠기죠[高月町]]에서 태어났다. 17~18세에 에도[江戶]로 가서 당시의 대학자 기노시타 쥰앙[木下順庵]의 문하생이 되었으며, 그의 추천으로 1689년에 쓰시마 번[對馬藩]에 채용되었다.

1698년(숙종 24) 조선 관계 업무를 담당하는 조선어지배(朝鮮御支配)에 임명되었고, 나가사키[長崎]와 부산[1703~1705]에 유학하였다. 이후 참판사의 도선주와 재판(裁判)으로 조선을 왕래하였고, 1711년과 1719년 통신 사행 때에는 쓰시마 번의 진문역(眞文役)으로 통신사 일행을 에도까지 수행하였다. 이러한 경력을 통해 조선 외교의 전문가가 된 아메노모리 호슈는 많은 저서와 의견서를 남겼는데, 『왜어류해(倭語類解)』, 교린수지(交隣須知)[1703], 『교린 시말 물어(交隣始末物語)』[1714], 『교린 제성(交隣提醒)』[1728], 『성신당기(誠信堂記)』, 『방주료간서(芳洲了簡書)』, 『치요관견(治要管見)』[1753], 『たはれ草』 등이 있다.

[편찬/간행 경위]

교린수지는 쓰시마 번에서 오랫동안 조선과의 외교를 담당했던 아메노모리 호슈가 편찬한 조선어 학습서로, 본문이 일본어와 그에 해당하는 한국어 문장으로 이루어진 일종의 어휘 용례집이다. 1703년경에 처음 편찬된 이후 20세기 초까지 여러 가지 다른 간행본이 존재하며, 당시 양국의 언어와 이후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다.

[형태/서지]

초간본 교린수지 권1, 첫 장에는 이 책의 간행과 관련하여, ‘우삼방주(雨森芳洲) 편집, 포뢰유(浦瀨裕) 교정 증보, 보박번승(寶迫繁勝) 인쇄’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4권 4책 백심판(白心版)이고, 사주 쌍변에 책 크기는 26×18.5㎝이며, 내변은 21×14㎝이다. 각 장은 대상 항목을 7행의 굵은 글씨로 적었다.

교린수지의 판본과 소장처는 다음과 같다. 교토대학[京都大學] 본[苗代川本] 권1, 2, 3, 4는 필사 시기가 명확하지 않다. 서울대학교 본 권2, 3, 4는 1863~1873년에 필사하였다. 도쿄대학[東京大學] 소창문고(小倉文庫) 본[제주(濟州) 본] 권2, 3은 1880년경에 필사하였다. 나카무라[中村] 본 권3은 필사 시기가 불분명하다. 도쿄대학 구 남규문고(舊南葵文庫) 본[小田 본] 권4는 1795년에 필사하였다.

심수관가 본 가운데 권1[일부]은 필사 시기가 분명하지 않으며, 권3의 일부는 1813년, 권3의 다른 일부는 1885년경에 필사하였다. 러시아동방학연구소 본[Aston 본] 권1의 일부는 필사 시기가 불분명하며, 권1 나머지는 1846년에 필사하였다. 권2의 일부는 1885년에, 권4는 1842년에 필사하였다. 대마역사민속자료관 본[白水 본] 권1은 18세기 말경에 필사하였다.

[구성/내용]

본문의 각 항목들은 큰 주제로 분리된다. 그 차례를 보면, 권1이 천문(天文), 시절(時節), 주야(晝夜), 방위(方位), 지리(地理), 강호(江湖), 수모(水貌), 주즙(舟楫), 인품(人品), 관작(官爵), 천륜(天倫), 두부(頭部), 신부(身部), 형모(形貌), 우죽(羽族), 권2가 주수(走獸), 수족(水族), 충곤충(虫昆蟲), 화서(禾黍), 소채(蔬菜), 농포(農圃), 과실(果實), 수목(樹木), 화품(花品), 초훼(草卉), 궁택(宮宅), 도읍(都邑), 미취(味臭), 끽모(喫貌), 숙설(熟設), 매매(賣買), 질병(疾病), 행동(行動), 권3이 묘사(墓寺), 금보(金寶), 포진(鋪陳), 포백(布帛), 채색(彩色), 의관(衣冠), 여식(女飾), 성기(盛器), 직기(織器), 풍물(風物), 시청(視聽), 차륜(車輪), 안구(鞍具), 희물(戱物), 정형(政刑), 문식(文式), 무비(武備), 정전(征戰), 반식(飯食), 권4가 정지(靜止), 수운(手運), 족사(足使), 심동(心動), 언어(言語), 언사(言辭), 심사(心使), 사단(四端), 태다(太多), 범위(範圍), 잡어(雜語), 소요(逍遙), 천간(天干), 지지(地支), 시각(時刻) 순이다.

이러한 분류 방식은 동양의 사서(辭書)의 분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범례의 인용 절목에 나오는 『훈몽자회(訓蒙字會)』 등의 배열 방식과 흡사하다. 범례에는 교린수지와 『인어대방(隣語大方)』의 이정(釐正) 인용 목록이 먼저 나온다. 조선 쪽의 문헌에는 『서경 언해(書經諺解)』, 『시 언해(時諺解)』, 『사서 언해(四書諺解)』, 『왜어 유해(倭語類解)』, 『전운 옥편(全韻玉篇)』, 『훈몽자회』, 『천자문(千字文)』 등이 열거되어 있는데, 앞의 경서 언해는 문장의 내용과 쓰임을 참고하기 위함이고, 뒤의 문헌은 어휘를 참고하기 위함이다.

[의의와 평가]

교린수지는 18세기에 일본인들이 어떻게 조선어 학습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조선어 표기법의 변화는 물론이고, 어미 등 문법 형태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지금은 거의 쓰지 않는 어휘들의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또한 1904년의 교린수지부터는 오늘날의 어절 단위로 띄어쓰기가 되어 있고, 쉼표와 마침표가 찍힐 자리에 권점이 찍힌다는 점 등이 흥미롭다. 2009년 12월 7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5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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