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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841
한자 金井鎭官衙址
영어의미역 Site of Geumjeongjin Gwana
이칭/별칭 금정진관아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28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주영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07년연표보기 - 금정진 관아 건립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4년연표보기 -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가 지표 조사를 실시함
문화재 지정 일시 2006년 7월 3일연표보기 - 금정진관아터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금정진관아터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2년 - 주민이 주택을 재건축하면서 발견함
소재지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280
성격 관청 건물 터
지정면적 8,910㎡
소유자 국유 등
관리자 부산광역시 금정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성(金井山城) 내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아 터.

[개설]

금정진의 관아는 국내 최대 규모의 금정산성과 산성 주변을 관리하기 위하여 1707년 동래부사 한배하(韓配夏)금정산성의 중성을 쌓으면서 건립한 것이다. 『동래부지(東萊府誌)』 ‘관아조’에 “좌기청 6칸, 좌우 행랑 각 5칸, 군기고 4칸, 화약고 1칸, 내동헌 3칸, 좌기청 남쪽에 별전청 4칸이 있다.”라고 하였다.

1872년에 제작된 『금정산성진지도(金井山城鎭地圖)』에도 석축으로 정방형 부지에 건물이 표현되어 있다. 북쪽 건물은 좌기청[별장 집무처]으로 보이고, 팔작지붕이며, 정면을 기준으로 주 칸이 5칸으로 그려져 있다. 이 건물 전면 아래 좌우에는 행랑으로 추정되는 건물이 자리하고 있는데, 좌측 건물은 팔작지붕이고 우측은 맞배지붕이다. 좌우 행랑[관리의 업무 및 숙식처] 모두 정면 주 칸이 3칸으로 그려져 있다. 좌기청의 남쪽 정면에는 별전청[군관들의 집무처]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팔작지붕이며, 정면을 기준으로 주 칸이 3칸으로 그려져 있다. 이 건물을 중심으로 왼쪽은 내동헌[근무자들의 숙식처]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별전청과 동일하게 팔작지붕에 정면 3칸으로 그려져 있으나, 규모는 작게 그려져 있다. 오른쪽 건물도 왼쪽과 동일한 형식으로 팔작지붕에 정면 3칸으로 그려져 있다.

[변천]

일제 강점기 때 부산 금정산성 금정진의 관아들이 파괴되었고, 이곳에 있었던 무기도 몰수당하였다.

[위치]

금정진관아터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 죽전 마을 비석골[203번 버스 종점 일대]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금정진관아터금성동 주민이 1991년 태풍으로 무너진 집을 이듬해에 개축할 때에 주춧돌 6개가 나오면서 알려지게 되었다. 지름이 1m 정도 되는 외삼문(外三門)의 원형 주춧돌 2개, 도자기편, 화살촉, 창, 칼, 숯 등이 발견되었다. 2004년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가 지표 조사를 실시하여 유적을 확인하였다. 금정진관아터의 지형은 남북으로 급한 경사를 이루며, 3단의 층단식 기반 구조를 이루어 건물을 배치하였다. 그 외에 감옥, 군관 서당, 산성창, 장고방 등의 건물 터가 발견되었다.

[현황]

관아의 건물과 관련되는 주춧돌 등의 석조물이 흩어져 있으며, 죽전 마을이 사유지로 되어 ‘금정진관아터’라는 안내판만 설치되어 있다. 2006년 7월 3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2007년 부산 금정산성에 대한 종합적인 정비 대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금정진관아터가 거론되었다. 유적지 정비를 위해서는 토지 매입과 정밀한 발굴 조사를 실시하고, 이를 통하여 관아터 및 관청을 복원하는 등 종합적인 보존 대책이 필요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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