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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816
한자 淸凉寺釋迦牟尼後佛幀
영어의미역 Sakyamuni Platform Painting, Ch’ongnyangsa
이칭/별칭 「청량사 석가 영산 회상도」,「청량사 석가 설법도」,「청량사 영산 회상탱」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제도로 29[명지동 445]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박은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918년연표보기 - 제작
문화재 지정 일시 2005년 12월 27일연표보기 - 청량사석가모니후불탱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량사석가모니후불탱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
현 소장처 청량사 - 부산광역시 강서구 제도로 29[명지동 445]지도보기
원소재지 청량사 - 부산광역시 강서구 제도로 29[명지동 445]지도보기
성격 불화
작가 완호
서체/기법 면 바탕에 채색
소유자 청량사
관리자 청량사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명지동 청량사에 봉안된 일제 강점기의 석가모니후불탱.

[개설]

청량사석가모니후불탱(淸凉寺釋迦牟尼後佛幀)은 화기(畵記)에 의하면 1918년 수화승(首畵僧)인 완호(玩虎) 정희(定熙)가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12월 27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청량사석가모니후불탱의 크기는 세로 128.5㎝, 가로 214.0㎝로 옆으로 긴 장방형을 이루며, 면 바탕에 채색을 베푼 작품이다. 도상 구성은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크게 그리고, 그 양쪽으로 권속들을 가로로 줄을 지어 배치하였다. 앞쪽 열에는 문수·보현보살을 포함하여 보살상 7위와 여래형 1위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하였고, 그 뒤쪽에는 황색의 채운(彩雲) 속에 좌우 십대 제자와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천부상 2위를 묘사하였다. 화면 네 모서리에는 금강상 4위를 각각 배치하여 화면 구도상 꽉 짜인 듯한 안정감을 주고 있다. 화면 가장 위쪽 가장자리에 원형 두광을 구비한 사천왕상 2위를 배치하였고, 채운에 둘러싸인 본존 두광 양측에는 동자상 2위를 작게 묘사하였다.

[특징]

완호는 1920년을 전후한 시기에 유사한 도상 및 화법을 지닌 여래 후불도를 연작으로 제작하였는데, 청량사석가모니후불탱은 그중 하나이다. 이와 유사한 도상적 특징을 보이는 작품으로는 통도사 사명암[1917], 복천사[1921], 연등사[1924], 범어사 계명암[1927] 등에 봉안된 불화가 있다.

이들 작품은 화면 본지의 크기가 세로에 비해 가로 폭이 넓은 장방형의 중형급 불화로 근대 이후 건립된 전각의 후불 벽면의 크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이러한 화면 크기 때문에 도상을 가로로 정연하게 일렬로 배치하였으며, 화면 중앙에 위치한 여래상을 중심으로 화면 아래쪽에 원형의 녹색 두광을 갖춘 보살상의 신체를 가능한 드러내어 배치하고, 위쪽에 십대 제자를 비롯한 권속들의 도상을 축소하여 표현하였다. 그런데 청량사석가모니후불탱의 경우 보살상과 여래형 도상이 대칭을 이루는 독특한 현상을 이루고 있는데, 복천사석가영산회상도(福泉寺釋迦靈山會上圖)에서도 유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지장보살상에 대칭되는 1위의 여래형 도상은 대응하는 상징성을 지닌 도상으로, 조선 후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많이 조성된 칠성도의 치성광여래를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청량사석가모니후불탱은 완호가 조성한 연작 여래 후불탱의 하나로, 근대 작품으로서는 화격이 뛰어난 우수한 작품이다. 완호는 근대 부산의 범어사 및 영남 지방의 대불모로 활약한 화승으로,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전통 불화를 계승하면서도 답습하지 않고 도상 구성과 배치에 끊임없는 변화를 시도한 불모이다. 청량사석가모니후불탱에서는 도상이 프레임 속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융통성 있게 변화를 구사하고 있어 완호의 독특한 화풍을 읽을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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