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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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智士洞明洞堂山祭 |
영어의미역 |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Jisa-dong Myeongdongmaeul |
이칭/별칭 | 당산 할매 나무제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의례/제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허왕후길 54[지사동 97-1] |
집필자 | 류경자 |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 명동 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지사동 명동 당산제는 부정기적으로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지사동 97-1번지에 있는 당산 나무에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이를 ‘당산 할매 나무제’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지사동 명동 당산제는 명동 마을의 형성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당산 나무의 수령으로 보아 1800년 무렵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 당산 나무는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고사했다. 따라서 그 옆에 있던 다른 나무를 당산 나무로 정하였지만, 그 후로는 일정한 날을 정해 제사를 지내는 정기적인 당산제는 행하지 않고 있다. 대신 마을 행사 때마다 행사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간단하게 올리는 정도의 약식 제의를 행한다.
[신당/신체의 형태]
당산 할매 나무는 명동 마을 입구에서 100m 거리의 들판에 위치해 있었다. 마을의 수호신 격이었던 옛 당산 나무는 팽나무인데 수령은 200여 년이었고, 가슴 높이에서 잰 둘레가 368㎝, 높이는 약 15m이었으며 제단은 없었다. 옛 당산 나무 자리의 앞쪽으로는 개울이 흐르고 있으며, 뒤쪽에는 밭이 있다. 그리고 왼쪽에는 벽오동나무가 한 그루 서 있으며, 담장은 없었다. 2011년 현재 당산 나무의 바로 오른쪽 앞으로 마을 회관이 들어서 있다.
[절차]
지사동 명동 당산제의 제관은 ‘당산 제관’이라 칭하는데, 제의 전 마을 회의에서 집사와 함께 선정하였다. 제관에 선정된 후 부정한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으며, 제관에 대한 보수는 없었다. 2003년 이후부터는 정기적인 제의를 베풀지 않기 때문에 제관이 없다. 제의 날짜는 모내기 전과 추수 후 택일하여 1년에 2회, 자정에 제의를 행하였으나, 2011년 현재 정기적 제의는 중단되었다.
제의의 경비는 동제답(洞祭畓)의 수익금으로 하였는데, 약 10만 원 정도가 소요되었다. 제물의 종류와 제물 진설 및 제의 절차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으나, 분향하기 전에 당산 나무에 술을 세 잔 부었다. 제물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밥, 국, 떡, 나물, 포(脯), 과일 등이었다.
명동 마을에서는 당산제에 앞서 지내는 산신제를 ‘당산 할매 나무제’와 합사해서 지냈다. 이는 아마도 당산 나무가 들판에 있다 보니 제의의 진행상 산과의 거리가 너무 먼 관계로 산신제를 별도로 지내는데 애로가 있었을 것이며, 이에 따라 편의상 합사하여 지내게 된 것 같다.
제관은 선정된 날부터 부정한 곳을 피하며 어느 정도의 금기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제의 3일 전부터 시작하여 제의 후 3개월간까지는 철저한 금기 생활을 했다. 그러나 현재는 제관을 따로 선정하지 않기 때문에 지켜야 할 금기도 당연히 사라졌다.
[부대 행사]
지사동 명동 당산제가 끝난 뒤에는 부정이 없는 마을의 연로한 사람들을 불러 제관과 함께 음복했다.
[현황]
당산제를 지내던 원래의 당산 할매 나무가 2003년 태풍에 의해 고사한 후 그 자리에 느티나무를 한 그루 심었는데, 아직 수령이 얼마 되지 않아 나무가 크지는 않다. 때문에 지금은 그 옆에 있는 다른 나무를 당산 나무로 마을에서 지정해 두고 있다. 그리고 두 나무의 앞에는 편편하고 큰 돌[길이 2m, 넓이 1.2m, 높이 50㎝ 정도] 6개를 제단처럼 놓아두었다.
하지만 요즘은 날을 잡아 지내는 정기적인 지사동 명동 당산제는 중단되었고, 대신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마을의 노인들이 행사를 위해 준비한 음식을 당산 나무 앞에 갖다 올리도록 한다. 주로 12월 27일의 대동회, 음력 정월 대보름, 어버이날 등이 그때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