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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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德玉 |
영어음역 | Yu Deokok |
이칭/별칭 | 윤보(潤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강서구 죽림동 719-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상기 |
[정의]
부산에 선정비가 있는, 조선 후기 김해 부사를 지낸 무신.
[개설]
유덕옥(柳德玉)은 무관 출신이지만 장흥 부사, 해미 현감 등 지방 관아의 수령으로 백성을 고루 보살핀 충직한 관리였고, 효자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가계]
본관은 전주, 자는 윤보(潤寶). 아버지는 호조 좌랑(戶曹佐郞) 유위(柳偉)이고, 아들 유작(柳綽)은 병과에 급제하여 정언, 지평, 장령을 거쳐서 서산 군수, 영해 군수, 길주 목사를 역임했다.
[활동 사항]
유덕옥[1653~1711]은 1676년(숙종 2) 무과에 급제한 후 1682년(숙종 8) 천거에 의해 선전관에 임명된 이후 도총부 도사(都摠府都事),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 등을 지냈다. 1695년(숙종 21) 큰 흉년이 들자 어명으로 장흥 부사(長興府使)로 나가 굶주린 백성을 고루 살피고 구제하니 혜택을 입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어 여산 영장(礪山營將)으로 옮겨 기근으로 뿔뿔이 흩어진 주민들을 다시 불러 모았다.
1700년(숙종 26) 오위장(五衛將)·해미 현감(海美縣監)을 거쳐 김해 부사(金海府使)가 되어서는 가락 죽도에 백성들이 들어가 살도록 하였다. 죽도는 본래 무인도로, 대변청(待變廳)과 군 물품 보관 창고인 해창만 있고, 백성의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중간에 이동언의 모함으로 연서역에 유배되었으나 곧 무죄가 밝혀져 풀려났다.
[묘소]
유덕옥의 묘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 안날뫼[內飛山]에 있다. 묘갈명(墓碣銘)은 저촌(樗村) 심육(沈錥)이 짓고, 조명교(曺命敎)가 글을 썼다.
[상훈과 추모]
1702년(숙종 28) 김해 부사 재직 중 선정으로 ‘유덕옥 애민 선정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