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7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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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姜錫鎭 |
영어음역 | Gang Seokjin |
이칭/별칭 | 동명(東明)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신선로 294[용당동 123]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장지용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기업인.
[가계]
호는 동명(東明). 1907년 12월 21일 경상북도 청도군 풍각면 덕양동에서 아버지 강병우(姜炳佑)와 어머니 서순득(徐順得)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출생하였다. 1927년 고장호(高長湖)의 둘째 딸 고고화(高古華)와 결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강석진(姜錫鎭)은 1923년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에 있는 청도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5년에 부산에서 가구 점포를 겸한 제재소인 동명제재소를 설립하였다. 1945년에 합판 제조 및 제재 공장을 이설, 확장하고, 1949년에는 동명목재상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1960년에는 남구 용당동에 제1 합판 공장을 착공한 후 열대 원목인 나왕(羅王)을 수입하여 합판을 생산하였다. 1961년에는 국내 최초로 합판 수출을 시작하였으며, 1962년에는 수출 실적이 3만 달러에 이르렀다.
1967년에는 가공 합판 공장과 포르마린 공장, 제2 합판 공장을 준공하였고, 같은 해 부산은행을 설립하였으며, 1968년에 명예 회장에 추대되었다. 1968년에는 제2 가공 합판 공장을 신설하였는데, 당시 동명목재의 수출액이 2175만 달러에 이르러서 이 해 개인 부문 납세 왕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1973년에는 부산투자금융주식회사를 설립하고, 고무 로라 공장, 페인트 공장을 신설하였다.
강석진은 1974년 제3 합판 공장과 화학 가공 공장을 새로 짓고 동명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다. 1975년에는 합성수지 공장, 유압 기기 공장, 고압 호스 공장을 착공하였고, 중기 정비 공장을 준공하였다. 1976년에는 동명수출포장(주)·동영제지·동성해운(주), 1977년에는 동명개발(주), 1979년에는 동명식품(주)를 차례로 설립하였다.
1962년에 강석진은 제4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의 잔여 임기를 대행한 것을 시작으로 1967년부터 1976년까지 제6·7·8대 부산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하였다. 한편, 1969년부터 1967년까지는 사단법인 부산항부두관리협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1971년부터 1978년까지는 사단법인 부산불교신도회 회장을 역임하며 진해 호국사[1972년], 부산 금련사[1972], 동명불원[1977]을 창건하였다.
1964년에는 B.B.S.[Big Brother and Sister] 부산광역시 연맹 회장으로 취임하였고, 1977년에는 학교법인 동명문화학원 설립 허가를 받아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1978년 동원공업고등학교[현 동명정보공업고등학교]를 개교하였고, 동원공업전문대학[현 동명대학]을 설립하였다.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와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의해 반사회적 기업인으로 몰리면서 동명문화학원을 제외한 전 재산을 강제 헌납이란 형식으로 강탈당하였다. 1984년 78세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금탑 산업 훈장[제63·745호], 은탑 산업 훈장[제77·94·7464호], 동탑 산업 훈장[제105·149·747호], 국민 포장[5회], 산업 포장[4회], 식산 포장[1964], 공익 포장[1965년], 적십자 유공 포장[제52·482호], 수출 유공 대통령상[제10·13회], 수출 최고상[1968·1969·1970·1971], 대통령 표창[28회], 이외에 국무총리 포장 등 총 330회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