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703
한자 溫井院
영어의미역 Onjeongwon Hot Springs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은정

[정의]

조선 시대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 있던, 관원이 공무로 다닐 때 숙식을 제공하기 위해 국가가 운영한 숙박 시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중앙 집권 체제가 강화됨에 따라 수도 서울과 지방 사이의 교통·통신이 국가 운영상 긴요하게 되었다. 이에 관한 역할의 일부를 담당한 것이 역(驛)과 원(院)이었는데, 이 중 원은 일반 여객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는 일종의 여관이었다. 원은 또한 왕이 지방을 순시하거나 피난길에 이용되기도 하였고, 각 도의 관찰사가 고을을 순행할 때 점심을 먹거나 마필을 교체하는 곳으로도 쓰였으며, 민심을 파악하거나 고을 수령들에 관한 내사(內査) 자료를 얻는 데 이용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목적으로 조선 시대에 동래현에 각종 역원이 신설되었는데, 기록에 의하면 부산 동래의 온정을 관리하는 관속인 온정직을 두고 온정으로 오가는 욕객을 위해 온정원(溫井院)을 설치하고 역마까지 두었다고 한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래현 역원조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휴산역(休山驛)은 현의 남쪽 1리에 있다. 소산역(蘇山驛)은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온정원은 온천 옆에 있다. 언수원(彦樹院)은 현의 북쪽 15리에 있다. 사천원(沙川院)동평현(東平縣)에 있다.” 이 사료에서 동래현에 설치된 여러 역원 중 온정원은 온천 옆에 있다고 전하는데, 현재의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주변으로 추정된다.

[변천]

원 제도는 고려 시대에 처음 시작되었는데 조선 시대에 와서 더욱 정비되었다. 세종 대에는 이곳의 지방 유지를 원주(院主)로 정하고 원을 관리하게 하였다. 이후 세조 대에 이르러 원에 원전(院田)을 지급하여 경비와 급료로 충당하게 하였다. 초기에는 공용으로만 사용되었지만 후에 사용(私用)으로도 사용되었으나, 역시 사용자가 국한된 까닭에 점차 폐지되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대부분의 원이 폐지되었으며, 원이 있던 지역은 겨우 그 지방의 지명 유래 정도에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동래 온정원도 원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해지는 조선 후기에 폐지된 것으로 여겨지는데,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