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6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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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東萊靑年俱樂部 |
영어의미역 | Dongrae Young Adult Group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선화 |
[정의]
일제 강점기 부산 동래 지역에 있었던 청년 단체.
[설립 목적]
동래청년구락부는 3·1 운동 이후 청년들을 중심으로 민중의 계몽, 지덕체 삼육의 발달, 교육의 보급, 산업의 발달 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변천]
3·1 운동 이후 고양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전국적으로 많은 청년 단체들이 조직되었다. 동래 지역에서는 동래청년구락부가 제일 먼저 결성되었는데, 정확한 설립 일시는 알 수 없으나,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1920년경에는 결성된 것으로 보인다. 1921년 8월 경 동래청년구락부에서 활동한 중심인물을 보면 백광흠·조희수(趙熙守)·윤필균(尹弼均)·이환(李環) 등으로 이들은 동래동명학교 고등과와 동래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선후배 사이였다. 이들은 초기 청년 단체들과 마찬가지로 교육적·경제적 실력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문화 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동래청년구락부는 1921년 9월 이후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그로인해 1922년 1월 3일 미흡한 활동과 회원들의 불성실을 쇄신하고 보다 강력한 청년 단체 조직을 결성하기 위해 자진 해산하였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동래청년구락부는 주로 청년들의 심신 단련, 지역민의 숙원 사업 해결과 권익 신장을 위해 활동하였다. 체력 단련을 위해 축구팀과 야구팀 등 운동단을 조직하여 김해 등 경상남도 각지로 운동단을 파견하여 다른 지역의 청년 단체와 교류하였다. 또 온천장 중심의 동래권번과 예기로 인한 풍기문란 등을 엄중 단속하여 사회 풍기 개량에 힘썼고 동래 지역민들의 숙원 사업인 대운동장 건립을 위해 교섭을 벌이는 등 지역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농촌 지역으로 순회 강연단을 파견하여 교육·산업·위생문제 등에 대한 계몽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남자 야학 운영 등 지덕체 삼육 강화에 힘썼다.
[의의와 평가]
동래청년구락부는 동래 지역에서 최초로 설립된 청년 단체로 3·1 운동 이후 고양된 민족의식을 바탕으로 교육적·경제적 실력 양성을 목적으로 결성되어 지역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지는 등 1920년대 전반 동래 지역 청년 운동의 중심 단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