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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부 축성 등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669
한자 東萊府築城謄錄
영어음역 Dongnae-bu Chukseong Deungnok
영어의미역 Registration for Castle Construction in Dongnae
이칭/별칭 『내성 등록』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윤용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저자 동래부
편자 동래부
간행자 동래부
권책 1책
규격 33.2×21.3㎝
저술 시기/일시 1731년연표보기 - 저술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4년 - 국사편찬위원회에서 『각사 등록』 13으로 영인 간행
소장처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599
간행처 동래부 동헌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421-56지도보기

[정의]

1731년 동래부의 축성에 관해 기록한 등록.

[형태/서지]

『동래부 축성 등록(東萊府築城謄錄)』은 1책[22장]의 필사본으로, 책 크기는 33.2×21.3㎝이다.

[구성/내용]

『동래부 축성 등록』은 1731년(영조 7) 동래부 읍성 수축의 역사를 기록한 등록이다. 읍성의 규모, 동원된 인력, 여기에 부수되는 제반 업무 사항, 차후의 축성역과 성곽의 관리에 관한 규칙을 담은 절목류가 기록되어 있다. 내용은 성기(城基)의 치수, 축성 사소(築城四所) 및 다섯 성문의 개기(開基), 시역 일자(始役日字)와 완공 일자, 축성역의 감독자 명단, 각 군현에서 요역으로 징발된 일꾼을 기록한 「각관 연군 부역기(各官烟軍赴役記)」, 축성역에 자진 참여한 동래부의 이서(吏胥) 등의 인원을 기록한 「본부 각처 부조군 부역기(本府各處扶助軍赴役記)」, 징발된 경상도 각 군현 승군의 기록인 「각관 승군 부역기(各官僧軍赴役記)」, 그리고 축성역에 관한 신구(新舊)의 절목(節目) 등으로 나누어 구성되었다.

당시 동래부 읍성 수축의 역사에는 연인원 41만 7050명의 역군(役軍)이 동원되었다. 역군은 네 가지 부류, 즉 연군(烟軍)·부조군(扶助軍)·승군(僧軍)·사군(私軍)으로 분류되어, 각기 소속, 동원 인원, 사역 일수 등을 기재하였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연군이었는데, 동래부를 포함하여 인근의 7개 군현에서 주로 농민으로 구성된 연군 2만 9916명이 징발되었다. 부역한 날수를 계산하면 연인원으로는 19만 2504명에 달하였다.

등록에는 동래부 읍성의 축조와 관리에 관한 절목(節目)을 수록하였다. 「수성 절목(修城節目)」의 제1조는 성곽 수축의 역부를 징발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에 의하면 ‘동서남북 4소(所)마다 각기 부근 각 면에서 역군을 차출한다’고 했다. 4소 중 동소(東所)는 동면(東面) 및 남촌(南村)에서 담당할 것, 남소(南所)는 읍내 및 부산면에서 담당하고, 서소는 사천면(沙川面) 상하단(上下端)이, 북소는 서면북면이 담당하도록 명시하였다.

아울러 축성이 완료된 뒤에 적용되는 새 절목에는 차후의 동래부 축성역에서 더 이상 연군을 차역하지 말고 모군(募軍)을 고용하여 역사를 진행시킬 것을 분명히 하였다. 아울러 축성역에 소용되는 경비, 곧 모군의 품삯을 지불하고 각종 잡물을 조달하는 데 드는 비용은 수성창(守城倉) 환곡의 이자 수입으로 마련토록 규정하였다.

[의의와 평가]

『동래부 축성 등록』은 동래부 읍성의 규모, 동원된 인력, 여기에 부수되는 제반 업무 사항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동래부의 축성 상황을 참고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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