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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604
한자 卞璞
영어음역 Byeon Bak
이칭/별칭 탁지(琢之),술재(述齋)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예술인,인물/문무 관인
지역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5[온천동 산20-4]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변광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관|화가
성별
본관 밀양
대표경력 동래부 무임
활동 시기/일시 1760년연표보기 - 「부산진 순절도」[보물 제391호]·「동래부 순절도」[보물 제392호]를 그림
활동 시기/일시 1763년~1764년 - 일본 통신사를 따라가 활동
활동 시기/일시 1764년 - 「제청견사용전운」·「송하호도」 그림
활동 시기/일시 1765년 - ‘동래독진대아문’ 현판 글씨를 씀
활동 시기/일시 1779년 - 「유하마도」를 그림
활동 시기/일시 1781년 - 사처석교비[부산광역시 기념물 52호]의 비문을 씀
활동 시기/일시 1783년연표보기 - 「초량 왜관도」를 그림
출생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거주|이주지 부산광역시 동래구
활동지 부산광역시

[정의]

18세기 동래부에서 활약한 무관이자 화가.

[활동 사항]

변박(卞璞)의 자는 탁지(琢之), 호는 술재(述齋)이다. 동래부에서 태어나 무청(武廳)의 최고직인 장관청 천총(千摠), 별군관청 행수(行首), 수첩청 별장(別將) 등을 역임하였다. 1763년에서 1764년에는 일본에 가는 통신사행에 참여하여 화가로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통신사행의 최고 책임자인 조엄(趙曮)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동행하도록 하였다. 일본 사행 길에 새로운 문물을 보고 그림을 그려 자료로 남기고, 또 청견사(淸見寺) 등 유명 사찰에 머물 때 현판의 글씨나 그림 및 시문 등을 많이 남겼다. 현재 일본 시즈오카 현[靜岡縣]의 청견사에 변박이 지은 오언 율시 「제청견사용전운(題淸見寺用前韻)」이 남아 있다.

1765년 동래부 동헌의 대문 이름인 ‘동래 독진 대아문(東萊獨鎭大衙門)’이라는 커다란 현판 글씨를 썼고, 동래읍성 남문 밖에 든든한 돌다리를 준공한 것을 기념하는 사처석교비(四處石橋碑)[부산광역시 기념물 52호]의 비문을 쓰는 등 동래 관아의 공적인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였다. 변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760년에 임진왜란 당시의 전투 상황을 소재로 그린 「부산진 순절도(釜山鎭殉節圖)」와 「동래부 순절도(東萊府殉節圖)」가 있으며, 이것은 각각 보물 제391호와 보물 제392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1783년에는 「초량 왜관도」를 그려 왜관의 구조와 배치를 상세히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조선 후기 동래부에는 행정 업무를 맡은 작청(作廳)과 치안이나 군사 업무를 맡은 무청(武廳)이 있었다. 변박은 중인 신분으로서 무청의 직임을 지냈다. 특히 동래는 임진왜란 이후 군사·국방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무청의 역할이 중시되었기 때문에 무청 관련 관청이 매우 많았다. 중군청·군관청·교련청·장관청·수첩정·별기위청·별무사청·도훈도청·기패관청 등이 있었다. 조선 시대의 부산, 즉 동래를 대표할 만한 역사적 상징도 임진왜란 유적과 무임 관련 관청이며, 또 대표적 인물로서 변박을 들 수 있다. 더구나 상층 무임직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재주가 뛰어난 화가·서예가로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작품으로 「부산진 순절도」·「동래부 순절도」[1760, 육군박물관 소장]·「제청견사용전운」[1764, 청견사 소장]·「송하호도(松下虎圖)」[1764, 일본인 개인 소장]·‘동래 독진 대아문’ 현판 글씨[1765, 금강원 소재]·「유하마도(柳下馬圖)」[1779, 일본 다카마쓰 법연사 소장]·사처석교비 비문[1781, 금강원 소재]·「초량 왜관도」[178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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