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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511
한자 訥次洞堂山祭
영어의미역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in Nulcha-dong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 산15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류경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간 신앙|동제
의례시기/일시 음력 1월 2일 자정[할배 당산제]|음력 1월 1일 새벽[할매 당산제]
신당/신체 할매 당산: 제당|제단|한지로 만든 신체 할배 당산: 제당|제단|당산 할배도
시작 시기/일시 1830년 무렵연표보기 - 마을 형성과 함께 제당 건립, 당산제 시작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0년 무렵 - 제당 개축. 성불암의 이옥림이 일임하여 주관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3년 무렵 - 할배 당산제[이옥림 주관]와 할매 당산제[내눌 마을, 정거 마을 통장 주관]를 분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1년 현재 - 목신제, 벅수장군제, 골매기 할매제 등의 부속 제의 중단
의례 장소 할매 당산 -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 산15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배 당산 -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
의례 장소 목신 -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
의례 장소 벅수장군 -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
의례 장소 골매기 할매 -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눌차동 당산제는 음력 1월 1일 새벽[할매 당산제]과 1월 2일 자정[할배 당산제]에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 산15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할매 제당과 할배 제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풍어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눌차동내눌 마을, 외눌 마을, 정거 마을, 항월 마을 등 네 개의 자연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눌차동에는 두 곳의 제당이 있는데, 할매 제당과 할배 제당이 그것이다. 주민에 따르면 1830년 무렵에 마을 형성과 함께 제당이 건립되었고, 당산제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금지령 때문에 당산제가 중단된 적이 있고, 해방 이후 재개되었다. 1980년 무렵에 두 곳의 제당을 개축하였다.

본래 눌차동의 네 마을이 함께 제관을 뽑아 제의를 행하던 것을 1980년 무렵 성불암의 이옥림[여, 76세]에게 일임하여 주관하게 했다. 2003년 무렵부터 할배 당산제[이옥림 주관]와 할매 당산제[내눌 마을, 정거 마을 통장 주관]가 분리된 채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목신제(木神祭), 벅수장군제, 골매기 할매제 등의 부속 제의는 중단된 상태이다.

[신당/신체의 형태]

할매 제당은 눌차동의 닻거리[정거 마을]와 안모[내눌 마을] 사이에 위치한 국수봉 위에 있고, 할배 제당은 할매 제당으로부터 서쪽 약 800m 지점에 있는 산꼭대기[외눌 마을]과 목너미[항월 마을] 사이에 있다.

할매 제당은 대지가 26㎡[7.9평, 앞면 4m, 옆면 6.5m]에 면적이 5.5㎡[1.7평, 앞면 193㎝, 옆면 284㎝]이며, 서남향을 하고 있다. 슬레이트 맞배지붕[옆면이 ‘ㅅ’자 모양으로 된 지붕]에 블록 벽을 쌓았으며, 문은 외짝 여닫이 알루미늄 새시 문으로 마룻대 한쪽 끝인 서남쪽 벽에 붙어 있다. 문을 열면 ㄱ자형의 시멘트 제단이 보이는데, 정면에서 보이는 앞면이 190㎝이고, 옆면이 62㎝이며, 높이는 33㎝이다.

할매의 신체는 나무판자[가로 15.5㎝, 세로 160㎝]의 중앙에 녹색·황색·적색의 한지[가로 10㎝, 세로 27㎝]를 차례로 겹쳐 대님형 끈으로 묶어 놓은 것이다. 신체의 앞에는 촛대 2개, 향로 1개, 메 그릇 2개, 탕 그릇 2개, 과실 접시 2개가 놓여 있다. 제단의 왼쪽에는 녹색, 황색, 적색의 갑사천이 차례로 포개져 와이셔츠 통에 담겨 있는데, 이것은 할매의 옷이다. 이들 갑사천[가로 93㎝, 세로 85㎝]은 5번 접어져 있다.

할배 제당은 대지가 18.9㎡[5.7평, 앞면 5.4m, 옆면 3.5m]에 면적이 5.5㎡[1.7평, 앞면 190㎝, 옆면 290㎝]으로, 남남서향을 하고 있다. 제당의 구조물은 할매 제당과 같다. 제단은 직사각형[앞면 161㎝, 옆면 70㎝, 높이 36㎝]으로 된 시멘트 구조물인데, 제단 위의 벽에는 ‘당산 할배도[가로 47㎝, 세로 36㎝]’의 액자가 걸려 있다. 제단 위에는 촛대 2개, 향로 1개, 메 그릇 2개, 탕 그릇 2개, 술잔 2개, 수저 2벌과 긴 담뱃대 1개가 놓여 있다. 그리고 제단의 왼쪽에는 한복 한 벌이 놓여 있는데 할배의 옷이며, 제단의 오른편 아래에는 징과 북이 있다. 이상의 두 곳을 중심으로 눌차동 당산제가 행해지며, 부속 신역으로는 목신제, 벅수장군제, 골매기 할매제 신역이 있다.

목신제 신역은 할매 제당의 뒤쪽[닻거리 쪽] 돌담장 밖에 있는 100여 년 된 큰 소나무이다. 소나무 주위에는 낮은 돌담장[높이 80㎝, 둘레 9.2m]이 둘러 있고, 소나무 밑에는 타원형의 편편한 자연석으로 제단[지름 약 30㎝, 높이 5㎝]이 마련되어 있다.

벅수장군제 신역은 항월 마을의 중간 해변 길가 바위 밑에 있는 장승[천하대장군·지하여장군] 2개이다. 2개의 장승은 시멘트로 만들어져 있는데 높이가 150㎝, 둘레가 70㎝로 동남향을 하고 있다. 여기에 사용되는 제물은 항월 마을에서 준비한다.

골매기 할매제 신역은 외눌 마을에 있다. 외눌 도선장으로부터 외눌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 양편에는 60여 년이 된 포구나무와 큰 바위가 있는데, 왼편의 큰 바위 밑에 있는 자연석이 골매기 할매의 제단[앞면 130㎝, 옆면 60㎝, 높이 25㎝]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제물은 외눌 마을에서 준비한다.

[절차]

2003년 제의가 분리되기 이전의 눌차동 당산제는 음력 1월 2일 자정에 지냈다. 그러나 2011년 현재 분리된 할배 당산제는 음력 1월 2일 자정 그대로 지내고, 할매 당산제는 음력 1월 1일 새벽에 지내고 있다.

1. 제관 선정

당산제를 주관하는 제주를 이 마을에서는 일반적으로 ‘제관’이라 칭하며, 예전에는 눌차동의 내 마을 유지들이 음력 12월 25일 무렵에 모여 그해에 부정이 없고 생기복덕(生氣福德)이 있는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였다. 제관에 대한 보수는 따로 없다. 그러나 1980년 무렵 눌차동의 당산제 전체가 이옥림에게 일임되었다가 2003년 2개로 분리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2011년 현재는 제관 선정에 있어서도 양 당산제 간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할매 당산제의 경우 정거 마을의 통장이 주축이 되어 제의를 베풀고 총무가 제관을 맡는데 비해, 할배 당산제의 경우 여전히 이옥림이 담당하고 있다.

2. 제물과 제의 절차

할배 당산제의 경우, 1980년 무렵부터 2009년까지는 성불암에서 음식을 했으나, 이옥림이 절을 처분하면서부터는 자신의 집에서 음식을 준비한다. 제물을 구입하러 갈 때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과도 말을 하지 않는다. 제물은 소금부터 사는데, 제물을 구입할 때도 상인과의 대화를 꺼려 흥정하지 않고 제물 값을 부르는 대로 지불하며, 구입한 제물을 가지고 돌아올 때도 도중에 쉬지 않고 바로 온다.

할배 당산제는 양 당산제의 분리 이후에도 이옥림이 그대로 담당하고 있으므로, 제의 절차도 과거와 같다. 제사를 지내기 전에는 3일 전부터 제사 음식을 하기 위해 대문 앞에 장대를 걸쳐 두어 외부인의 접근을 막는다. 그믐날에는 마을 곳곳에 황토 흙을 세 무더기씩 놓는다. 주로 사거리 골목, 삼거리 골목 등 중요한 곳에 놓게 되는데, 만약 빠뜨린 곳이 생기면 그 인근 마을에서 야단이 난다. 그리고 황토와 함께 왼새끼를 꼬아 소나무와 대나무를 끼운 금줄을 친다. 제당 앞의 입구에도 마찬가지로 황토를 놓고 금줄을 친다.

제관은 제의날 밤 찬물에 목욕재계하고 정갈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제물을 가지고 제당에 가서 엄숙하게 제의를 올린다. 당산제를 지내러 올라갈 때는 집집마다 불을 밝히고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제사를 지내러 올라갈 때나 내려올 때는 절대로 다른 사람과 마주쳐서는 안 된다.

제물의 종류와 제의 절차는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되, 절편과 찰떡이 필수적이다. 과일은 세 가지 정도가 오르는데 배, 사과, 수박 등의 큰 과일이 기본이고 밤, 대추, 감 등이 추가된다. 생선은 대구[큰 것], 조기, 감성돔 등 세 가지가 기본이며, 그 외의 다른 생선이 추가되고, 마른 명태 큰 것이 오른다. 돼지고기는 갈비를 익히고, 나물은 원래 도라지, 고사리, 콩나물 등을 사용했으나 초라하다고 생각해 5가지 내지는 7가지를 쓴다. 시금치, 미역 등이 추가된다.

할매 당산제의 경우 제의의 절차가 간소화되어 황토를 놓거나 금줄을 치지 않고, 제관이 하루 전날 목욕재계하고 당산을 깨끗이 청소, 정돈한 후 제사를 지낸다. 제물은 통장의 부인이 준비하는데 일반 가정의 기제사와 같다. 대체로 조기, 민어, 돔 등의 생선과 돼지고기 산적을 쓴다. 나물은 일반적으로 5가지를 쓰는데 콩나물, 고사리, 도라지, 미역, 시금치 등이나 때에 따라서는 무나 미나리 등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제사를 지내고 난 후에는 제사 음식을 제당 주위에 뿌려 놓는다.

3. 제의 진행 과정

2003년 무렵 제의가 분리 이전까지는 ‘할매 당산제→ 목신제→ 할배 당산제→ 벅수장군제→ 골매기 할매제’의 순서로 제의를 베풀었다. 이옥림에게 일임시키면서 마을의 연장자가 제의 방식을 상세하게 일러 주었다고 하는데, 음력 1월 2일 밤 할매 당산에 가서 먼저 제사를 올리고, 10시쯤에 할배 당산으로 건너와서 준비해 자정에 제사를 지냈다.

할배 당산에 올라가기 전에 음식을 조금 따로 준비해서 길목에 있는 목신인 소나무 앞에 놓아두고 올라간다. 그리고 할배 당산에 올라가면 제단 아래 있는 징을 들고 할매 당산이 있는 마을 쪽을 향해 3번, 할배 당산이 있는 마을 쪽을 향해 3번을 울린다. 이것은 할배 당산제를 올린다는 신호이다. 당산제를 지내고 내려오면서 소나무 앞에서 목신제를 지낸다.

그리고 벅수장군제[벅수할배제라고도 함]와 골매기 할매제를 지내는데, 이때는 양쪽 마을의 가정에서 각각 제사상을 마련해 들고 나온다고 한다. 그러면 한 곳에서 신격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제물을 준비한 사람과 같이 제사를 지낸다. 제사를 지내고 난 후 제사상은 각자의 집으로 들고 들어간다. 당시 벅수장군은 나무로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돌로 교체되었다. 2011년 현재 부속 신역에 대한 제의는 베풀지 않는다.

4. 금기 기간 및 금기 사항

과거 제관은 제의 3일 전부터 제의 후 1년간까지 금기를 지켰다. 즉 출산, 혼사, 초상 등의 부정한 곳에는 출입하지 않고, 부부간의 잠자리도 피하는 등 몸가짐을 조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할배 당산제의 경우 이옥림이 혼자 1년 내내 금기를 지킨다. 그러나 제사 전 3일, 제사 후 3일 동안은 마을 사람 모두가 금기를 지킨다. 만약 아기를 낳을 사람이 있다면 미리 마을에서 내보낸다. 할매 당산제는 통장을 주축으로 하되, 총무가 제관이 되어 제사를 지내기 때문에 음복도 총무만 하고, 금기를 지키는 사람도 총무이다. 금기 기간은 제의 3개월 전부터 제의 후 1년 정도이다.

5. 제의 경비

제의 경비는 1980년 무렵까지만 하더라도 네 마을의 어촌계와 미역 합포장에서 마련된 기금으로 충당했는데, 약 50여 만 원이 들었다. 1980년 무렵 이옥림이 할매 당산제와 할배 당산제 두 곳 모두를 맡아 제사를 지낼 때는 제의 경비로 마을에서 대략 30만 원을 받았다. 2003년 제의를 분리한 이후, 2011년 현재 약 120만 원이 소요되는 할배 당산제의 경비는 외눌 마을항월 마을에서 부담하고 있으며, 약 100만 원이 소요되는 할매 당산제의 경비는 정거 마을내눌 마을에서 부담한다.

[축문]

예전에는 축문이 있었지만 1980년 무렵부터는 축문 없이 말로만 비는 이령수[신(神)에게 말로 읊조리면서 소원을 비는 행위]로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빌며, 마을 주민들의 사업과 관련해서도 재수를 빈다. “성바지[성의 종류]는 각각이요. 어짜든지 가정마다 사업자들, 사업이 잘 되고로 해 주이소.”라고 하며, 각각의 성바지들을 들먹이며 가정마다 소원 성취해 달라고 빈다.

[부대 행사]

예전에는 제의가 끝나고 음복을 했는데, 음복을 하는 사람은 적어도 보름 이상 금기 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마을의 노인층만 주로 음복을 했다. 그러나 1980년 무렵 이옥림이 일임하고부터는 변하기 시작했다. 이옥림이 처음 맡았을 때에는 마을의 노인들이 제의에 참여하여 같이 음복을 했으나, 몇 해 지나면서부터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2011년 현재는 할배 당산제의 경우 이옥림 외에 마을 사람들은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할매 당산제의 경우도 제관인 총무만 음복한다.

[현황]

눌차동의 할매 당산제와 할배 당산제가 분리된 이후 제당도 마찬가지로 완전히 분리되어 관리되고 있다. 마을 통장이 관리하는 할매 제당은 표지판도 설치하는 등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반면, 1인에게 일임한 할배 제당은 너무 노후해 비가 새고 쥐가 드나드는 등 심각한 상황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는 큰 나무가 가지를 뻗어 당산 위를 덮고 있는데, 바람이 불거나 해서 나무가 쓰러지게 되면 당산이 파손될 위험에 처해 있다. 그래서 빨리 나뭇가지를 잘라 주어야 하는데, 마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대책이 없는 상태라는 하소연이다.

[참고문헌]
  • 『부산의 당제』(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5)
  • 『부산의 자연 마을』2-강서구(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2007)
  • 인터뷰(강서구 눌차동 외눌 마을 이옥림, 여, 76세, 2011. 5. 29)
  • 인터뷰(강서구 눌차동 정거 마을 통장 이철희, 2011.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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