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5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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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敎育運動 |
영어의미역 | Education of the Saemaeul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안경식 |
[정의]
1972년부터 부산 지역의 각급 학교, 직장, 마을에서 실시된 새마을 교육.
[역사적 배경]
1970년 11월 새마을 운동이 시작된 이래, 1972년 3월 17일에는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의 특별 유시로 새마을 교육의 과제가 제시 되었다. 새마을 교육의 목표는 국민 교육 헌장의 이념 하에 학교 교육을 통하여 학생과 향토인에게 자조·자립·협동의 새마을 정신을 함양시킴으로써 향토 개발과 국가 발전에 공헌하는 실질적인 인간을 육성하는 데 있었다. 부산 지역에서는 1972년 제3대 홍순철 교육감이 부임하면서 교육 시책에 반영되었다.
[경과]
1972년 홍순철 교육감은 새마을 교육의 추진을 중점 실천 지표로 설정하였다. 이를 위해 학교가 그 중심이 되어 새마을 정신을 이해시키고 행동으로 연결시켜 생산과 직결되도록 하고자 하였다. 구체적 활동으로는 ‘땀 흘려 일하기 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자기 주변의 청소와 정리에 힘쓰는 실천을 통하여 부산직할시 당국의 ‘내 집 앞 내가 쓸기 운동’과 보조를 맞추었다.
또 새마을 학교를 개설하여 1,620명의 지도 요원을 양성하고, 각 학교에 주 1회 새마을 교실을 개최하여 16만 8478명에게 정신 계도와 소득 증대를 위한 기술 훈련 등을 실시하였다. 또 기관지 『부산 교육』 167호를 ‘새마을 교육’ 특집호로 하여 1,500부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1973년에 들어서도 새마을 정신에 입각한 새 학교 건설을 목표로 학교장 중심의 특색 있고 신념 있는 학교 육성을 부산 교육의 목표로 삼았다. 1975년에는 ‘새마을 교육의 심화’가 부산직할시 교육청의 장학 방침으로 정해졌고, 15만 6470명이 새마을 학교를 이수하였다. 또 1976년부터 1979년까지는 ‘새마을 정신의 생활화’가 장학 방침으로 정해졌다.
특히 1978년에는 도시 새마을 교육에 중점을 두었는데, 부산직할시 교육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추진한 교육 방침은 ‘근검절약의 생활화’[사치 퇴폐풍조 일소, 학용품 아껴 쓰기, 전기·수돗물 아껴 쓰기, 폐휴지 수집, 교복 물려주기 등], ‘저축 장려’[연간 19억 원 목표], ‘새마을 성공 사례 교육 및 생산적 교육 활동 심화’, ‘심신 장애인에 대한 교육 및 불우 이웃 돕기 전개’, ‘공한지의 활용 및 학교의 공원화’, ‘봉사 활동 전개’[공고생의 기술 봉사, 학도 호국단의 연합 봉사 활동 등], ‘자연 보호 운동 전개’, ‘공덕심 함양 지도’, ‘경로사상 고취’, ‘새마을 교실 287개교 운영’[안보 교육, 자원 절약, 소득 증대, 건강 교육, 인구 교육, 생활 개선 교육 등], ‘동백회[교직원 관리직 부인 모임] 활동’ 등이다. 한편, 부산직할시 교육연구원에서는 1973년 『새마을 교육 사례집』 1·2, 1974년에 『새마을 교육 실천 우수 사례집』 3·4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결과]
새마을 교육의 시책에 따라 1973년에는 공업계 학교에 대한 산학 협동 교육 체제 방안이 강구되어졌다. 위탁 교육과 현장 실습의 의무화, 현장 실습을 위한 산업체의 지정 및 기술 자격 취득의 의무화 등이 추진되었으며, 따라서 경제 성장과 교육을 밀접히 연관시켰다. 이와 같은 연계는 다른 기술계 학교에 있어서도 동일하였다.
[의의와 평가]
새마을 교육은 산학 협동 교육 체제의 시작이 되었으며, 1973년 1월에 선언된 ‘중화학 공업 정책’과도 관련이 있다. 따라서 이는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에 연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