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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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德謙 |
영어음역 | Mun Deokgyem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345[안락동 83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태영 |
[정의]
임진왜란 때 동래성에서 순절한 유생.
[활동사항]
문덕겸(文德謙)[?~1592]의 본관은 남평(南平)으로 임진왜란 무렵 동래로 옮겨 왔다. 동래향교 교수 노개방(盧蓋邦) 아래서 공부하던 중, 노개방이 밀양으로 어머니를 뵈러 간 사이 왜군이 쳐들어왔다. 이에 문덕겸은 향교에 있던 선현의 위패를 동래성 안 정원루로 옮기고, 그것을 지켰다. 전쟁 소식을 듣고 급히 달려온 노개방과 위패를 지키던 중 동래성 함락과 함께 왜군의 칼에 순절하였다. 아들 문건중(文建中)도 왜란 중에 죽었다. 문덕겸의 집은 여고리[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사직동]에 있었는데, 왜군이 북쪽으로 올라간 뒤에 노비 검산이 문덕겸의 시신을 거두어 마을에 묻었다. 그리고 문덕겸의 손녀를 키워서 동래 사람 김천상에게 시집보냈다.
[상훈과 추모]
김천상의 후손이 유생 이동형에게서 비문을 받아 문덕겸의 묘에 비석을 세웠다. 또한 동래구 안락동 충렬사와 해운대구 반송동에 있는 남평 문씨(南平文氏) 동래파 재실 운송재(雲松齋)에 배향되었다. 1748년(영조 13) 호조 좌랑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