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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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順英 |
영어음역 | Gim Soonyoung |
분야 |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51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박선애 |
[정의]
일제 강점기와 현대 부산 출신의 교육자이자 사회사업가.
[가계]
김순영(金順英)은 1899년 4월 28일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513번지에서 아버지 김성우(金聖佑)와 어머니 최남순(崔南順)의 2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는 큰오빠 김두운(金斗運), 큰언니 김무연, 둘째 언니 김새연, 둘째 오빠 김두휘(金斗輝)이다. 아버지 김성우는 삼남(三南) 지역을 주름잡는 해운업계의 거부로 청룡환(靑龍丸), 황룡환(黃龍丸)을 비롯한 작은 배 40~50척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서당 교육을 받았으나 일찍이 개화에 눈을 떠서 1905년 부산 초량여자보통학교를 설립하였다. 이러한 가정환경은 김순영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서, 전 생애에 걸쳐 육영 사업과 사회사업 등에 기여하게 하였다.
[활동 사항]
김순영은 1906년 부산 초량여자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12년에 졸업하였다. 같은 해 경성여학원으로 진학하여 1년 동안 다니다가, 1913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진명여고보, 현 진명여자고등학교]로 옮겼다. 1915년 진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단 귀향했는데, 당시 집안에서는 결혼을 서둘렀으나 어머니의 승낙을 얻어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경성여고보] 사범과에 진학하였다.
1916년 김순영은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경상남도 통영에 있는 통영보통학교[현 통영초등학교]에 교원으로 부임하였다. 1918년 아버지가 55세로 사망하자 통영에서 부산보통학교[현 봉래초등학교]로 근무처를 옮겼다. 1921년 당시 부산에 호열자가 만연하자 서울로 피난했다가, 동경관립여자고등사범학교로 유학을 단행, 문과에 입학하였다. 당시 조선총독부에서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와 평양여자고등보통학교 출신 중에서 1년에 1명을 선정하여 관비(官費)로 동경 유학을 보냈는데, 김순영은 1922년부터 이 혜택을 받았다.
1925년 동경관립여자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한 김순영은 서울의 정신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정신여자고등학교] 교원으로 부임했다. 담당 과목은 일어와 일본 역사였다. 1926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로 옮겨, 역시 일본어와 일본 역사를 가르쳤다. 1929년 개성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근했다가 1933년 사임하고 각천(覺泉) 최두선(崔斗善)과 결혼하여 서울 계동에서 살았다.
1960년 김순영은 대한적십자사 부녀자문위원으로 취임하여 13년간 일했는데, 그 가운데 마지막 4년간은 부녀자문위원장을 지냈다. 이때 헌혈차 구입, 적십자 어린이의 집 건립, 무료 급식소 개설 등 많은 일을 하였다. 1962년 대한여학사협회 재정부장, 1967년 대한여학사협회 부회장 겸 감사를 맡았다. 대한여학사협회는 일본 동경관린여자고등사범학교와 나라여자고등사범학교 출신자들이 8·15 해방 후에 만든 여고사 동창회(女高師同窓會)를 김활란이 확대하여 설립한 단체이다.
1970년 김순영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사유지 604.96㎡[183평] 대지를 대한여학사협회 건립 대지로 기증하고, 1973년 사재(私財) 1000만 원을 대한여학사협회 회관 건립을 위해 희사하였다. 1974년에는 사재 6000만 원을 이화여자대학교의 발전 기금으로 희사하였다. 1971년 자선 단체 자행회의 고문으로 활동하고, 이후 대한여학사협회 재단위원장 및 덕성여자대학교, 진명여자중학교와 진명여자고등학교 재단 이사를 역임하였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한 빛을 따라』[대한여학사협회·익문사, 1976]가 있다.
[상훈과 추모]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창립 85주년 기념식에서 공로 표창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자행회로부터 표창을 수상하였다. 1973년 대한적십자사로부터 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75년 대한여학사협회 회관을 ‘순영 기념관’으로 봉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