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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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靑春 |
영어음역 | Yi Cheongchu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용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우정임 |
[정의]
조선 후기 부산 출신의 의병.
[가계]
본관은 영천(永川). 고려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 이문한을 시조로 하고, 고려 좌명공신 신호위 대장군인 영양군 문정공 이대영(李大永)이 중시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인견(李仁堅)으로 사마시를 통달하여 진사가 되었고, 할아버지는 이현동(李賢東)으로 강직한 선비였다. 아버지는 이지(李芝)로 사마시에서 장원을 하였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기장 덕발리로 이사하여 살았다. 아들은 이응원(李應元)으로 임진왜란 때 동래군 전투에서 함께 활약하였으며 선무 원종 삼등 공신(宣武原從三等功臣) 충찬위 부장에 훈봉되었다.
[활동 사항]
이청춘(李靑春)[?~1592]은 일찍이 선무랑 행금정도 찰방(宣務郞行金井道察訪)을 지냈다. 1592년 4월 13일 왜군이 부산포에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들인 이응원에게 의병을 모으게 하였고, 한편으로 가산을 털어 병장기를 사들였다. 의병이 모이고 병장기가 갖추어지자 이응원과 함께 의병을 앞세워 동래성으로 달려갔다. 동래 부사 송상현(宋象賢)을 만나 진지에 배치되었다. 4월 15일 왜군이 동래성을 쳐들어오자 60세 노구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항전하였으나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응원은 아버지의 전사 소식을 듣고 울부짖으며 “반드시 왜적을 무찌르고 아비의 원수를 갚겠다.”라고 맹세하였다.
[묘소]
동래성 전투에서 순절한 이후 이청춘의 시신을 끝내 찾지 못하였다. 이에 초혼(招魂)하여,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용천리 산수곡 뒷산에 안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에 있는 영모재(永慕齋)에서 아들 이응원과 함께 배향되고 있다. 영천 이씨 소윤공파 진사공 문중에서 매년 음력 10월 11일에 추제(秋祭)를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