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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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辛起雲 |
영어음역 | Sin Giun |
이칭/별칭 | 우서(虞瑞),눌은(訥隱)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용수리 가동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공태도 |
[정의]
임진왜란 때 왜군에 잡혀갔다가 탈출한 부산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영월(寧越). 자는 우서(虞瑞), 호는 눌은(訥隱). 영월 신씨(寧越辛氏) 판서공파 23세손으로,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에서 순절한 신옥(辛沃)이다. 신옥은 영월 신씨 기장 입향조(入鄕祖)이다.
[활동 사항]
신기운(辛起雲)[1579~1642]의 아버지 신옥은 임진왜란 때 부산진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당시 열세 살이었던 신기운은 분노를 참지 못해 창을 들고 왜군이 점령하고 있던 부산진성으로 돌진하여 좌충우돌하다가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신기운은 일본에서 억류 생활을 할 때 틈만 나면 하천에서 수영 연습을 하여, 7년 만에 조각배를 타고 탈출에 성공하였다. 대한 해협을 건너다 왜군에게 발각되자 바다로 뛰어들어 표류하던 중 조선의 어선에 구조되어 부산포로 귀향하였다. 그 후 신기운은 해운대구 재송동에 터를 잡았다.
신기운은 영남 유림(儒林)을 대표하는 유학자였던 한강(寒岡) 정구(鄭逑) 밑에서 공부하였고, 정구의 『오복 연혁도(五服沿革圖)』[5가지 상복의 유래를 밝힌 책]의 제작을 도와 그 공으로 예빈시 참봉(禮賓寺參奉)에 임명되었으나 벼슬을 사양하였다. 신기운은 평생 동안 한 서린 왜적의 땅이 있는 동쪽을 향해 앉지 않았다고 한다.
[묘소]
신기운 의 묘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방곡리 산23번지[납골 묘]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19년(광해군 11) 척당사(倜儻士)[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사람]로서 기장 문묘 중건에 공이 많은 지방 공신 8가(八家) 13명에 뽑혀 문묘 향안에 봉안되고, 기장에 있는 다산정(茶山亭)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