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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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院里院- |
영어의미역 | Wonriwon Site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하리 마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한정훈 |
[정의]
조선 시대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
[제정 경위 및 목적]
17세기 초반에 울산군과 기장현의 경계 지점에 해당하는 오늘날 기장군 일광면 원리에 원(院) 시설을 설치하려고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 일대의 행정 구역 재편성에 따라 원의 설치 공사는 중단되었고, 대신에 그 역사적 사실을 기념하는 비석을 세웠다. 그 자리가 바로 숙과지(橚菓址)이고, 그곳에 정자나무가 있는 숙과정(菽菓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울산~기장을 오가던 행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내용]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하리 마을에 있는 원리원(院里院) 터 일대는 울산~기장 옛길의 주요 관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위치하였던 원은 고문헌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인접 마을인 부산광역시 기장군 일광면 원리 원당 마을에 위치한 숙과지 내용을 통해 그 정황을 유추해 볼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 후 1599년(선조 32)에 기장현이 폐지되면서 기장군 일광면 원리 일대를 경계로 하여 남쪽은 동래현에 합병되고, 북쪽은 울산군에 편입되어 하미면(下味面)이 되었다. 대개 고을의 경계 지점에는 관원들의 숙박을 위한 원이 설치되는 관행이 있었으므로 동래와 울산 경계가 되는 이곳에도 원을 설치하려고 공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1617년(광해군 9) 기장현이 다시 설치되었고, 1653년(효종 4)에 당시 기장 현감이던 강유후(姜裕後)가 상소하여 기장현이 폐지된 지 54년 만에 이 일대가 기장현의 영역으로 다시 편입되면서 상북면, 중북면, 하북면의 이른바 북삼면(北三面)으로 편성되었다. 오늘날의 기장군 일광면 원리 일대는 1681년(숙종 7) 기장군 중북면 원동(院洞)이 되었다. 이렇게 행정 구역이 재편됨에 따라 원을 설치할 필요성이 없게 되자 공사를 중지한 듯하다.
그 때문인지 몰라도 『기장현 읍지(機張縣邑誌)』 등을 비롯한 읍지(邑誌)에서 이 일대에 원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은 없고, 기장군 일광면 원리 하리 마을에 그 터만 남아 있었다고 구전되고 있을 뿐이다. 좌광천(左光川) 강가에 좌촌점(左村店)이라는 주막이 있었기 때문에 따로 원 시설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에 기장현이 다시 설치된 역사적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역민들이 이곳에 비석을 세웠는데, 바로 숙과지이다.
[변천]
기장군 일광면 원리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원리원과 관련하여 1910년(순조 4)경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에는 기장군 중북면에 좌동점(佐東店), 좌천점과 함께 원동점(院洞店), 숙과정점(叔果亭店)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이들 네 주막은 좌촌장(佐村場)의 유통로에 위치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전 시기에 원이 설치되었던 지점에 20세기 전후에 주막이 생긴 것이다.
[의의와 평가]
원리원 터는 행정 구역 변천에 따른 원 시설의 치폐(致斃) 논의를 보여 주는 자료이다. 비록 관 주도의 역원 시설은 아니지만 정자와 같은 편의 시설이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