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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장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426
한자 松亭場
영어의미역 Songjeonjang in Busan
분야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유형 지명/시설
지역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한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장
현 소재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정의]

일제 강점기부터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에서 열리고 있는 오일장.

[개설]

송정장(松亭場)이 위치한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는 1831년(순조 31) 간행된 『기장현 읍지(機張縣邑誌)』와 1904년(고종 41) 『경상남도 기장군 가호안(慶尙南道機張郡家戶案)』기장현 하서면 입석방(立石坊)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뒤 1914년 3월 1일 지방 제도 개편에 따라 동래군 철마면 송정리가 되었다.

송정리는 동(東)으로 기장, 서(西)로 양산, 남(南)으로 동래, 북(北)으로 울산에 통하는 큰 길목에 자리하였다. 이러한 지리적 입지로 사통팔달의 분기점이 되어 상인들이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오일장이 형성된 것이다. 이러한 송정장은 20세기 이전의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고, 일제 강점기 때의 자료에서 확인되고 있다. 가장 번창하던 1910년, 1920년대에는 부산 지역 전체에서 동래 읍내장(邑內場)[오늘날의 동래 시장] 다음가는 시장으로 발전하였다.

[건립 경위]

기장군 철마면철마산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 넓은 터에는 예부터 노송과 팽나무 등이 많았는데, 송정리를 지나가던 장꾼들과 과객(科客)들이 이곳의 정자나무에서 쉬어 가곤 하였다. 자연스럽게 정자나무 아래쪽에는 주막도 생겼다. 기장·양산·동래 고을의 관원들도 이곳까지 와서 정자에서 석별을 아쉬워하면서 배웅하였다. 말하자면 이웃 고을에서 온 친한 벗과 서울이나 고향으로 떠나는 관원을 이곳까지 따라와서 배웅하였던 것이다.

「차성가(車城歌)」의 하서면(下西面)편에 “임곡 사양(林谷斜陽) 저문 길에 입석(立石)에 말을 메고 우리 벗님 보내는데 그 아니 송정자(送亭子)가”라고 하여 만남과 헤어짐을 자세하게 묘사하였다. 송정리는 송별 정자(送別亭子)의 약칭이다. 송정자의 존재는 이곳이 가지는 교통 지리적 특징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이 송정장의 형성 과정과도 관련이 있다. 약 100년 전 송정리는 기장과 양산·동래·울산 방면으로 가는 상인과 관인의 교통 요충지이었다. 이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만나 쉬어 가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시장이 형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변천]

송정장은 오늘날 기장군 철마면 송정리 동부산농협 삼동지소 옆 공터에 자리하였다. 송정장 관련 기록을 살펴보면, 조선 시대 읍지류나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임원 경제지(林圓經濟志)』 등은 물론 1899년(고종 35)에 제작한 『기장현 읍지』에서도 존재가 확인되지 않는다. 송정장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앞선 자료는 1917년에 간행된 『동래 안내』[구납중길(久納重吉) 지음]이다. 이 책에는 동래군 관내 6개의 보통 시장과 각 시장의 1개월 매상 추정치가 기록되어 있다.

송정 시장은 5일과 10일에 서는 장으로 한 달 매상액이 1,000엔 정도로 동래 시장[2,400엔]에 이어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은 구포[900엔], 좌천[600엔], 기장[300엔], 하단[200엔] 순이다. 그리고 우(牛)시장의 경우는 동래·장안[좌천]·철마[송정] 3개가 있었다. 1년 매매가(賣買價)를 보면, 동래가 7만 1910엔, 좌천이 7,622엔, 송정이 6,228엔이다. 또한 송정 시장기장 시장[종전의 기장 읍내장]과 장날이 5, 10일로 겹치는 점도 주목된다. 아마 송정 시장기장 시장보다 좌천 시장[4, 9일]과 유통망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당시 송정장 내에 있던 주막이 1910년경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에서 기장군 하서면의 송정점(宋亭店)으로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1924년 조선 총독부에서 편찬한 『시가지의 상권(市街地の商圈)』에서도 『동래 안내』와 마찬가지로 송정 시장을 비롯한 6개의 시장이 소개되어 있다. 내용에 따르면 송정 시장은 개시(開市) 때 출입 상인 수는 200명, 구매자 수는 1,000명 정도이었다. 이에 반해 기장 시장은 150명과 300명, 좌천 시장은 250명과 600명 정도이었다. 이들 수치를 비교하면 송정 시장은 기장 지역의 기장 시장이나 좌천 시장보다 많은 수의 구매자가 출입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20년대 후반부터는 좌천장이 기장 지역 시장권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면서 송정장의 규모가 다소 축소되었다.

[의의와 평가]

송정장은 부산 지역 전통 장시(場市) 중 한 곳으로 다른 장시에 비해 비교적 옛 장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동래·기장·양산·울산 네 고을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는 만큼 전통 장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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