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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퇴치 교육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336
한자 文盲退治敎育運動
영어의미역 Education Campaign for Eradicating Illiteracy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경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사회 운동|교육 운동
관련인물/단체 김계원|정신득|초량야학회|한글전용촉진회 경남지회
발생|시작 시기/일시 1945년 12월연표보기 - 성인교육위원회 조직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6년 4월 4일 - 부산부인회가 초량야학회 개설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49년 11월 28일 - 한글전용촉진회 경남지회에서 월요 한글 강좌 개설
발생|시작 장소 부산광역시 서구 부민동2가 1
발생|시작 장소 태고사 -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발생|시작 장소 부산시립도서관 - 부산광역시 중구 동광동

[정의]

해방 후 부산 지역에서 학교와 사회 교육 기관이 참여하여 실시한 문맹 퇴치 운동.

[역사적 배경]

해방 직전인 1944년 5월 현재 남한의 문맹자 수는 1980만 1902명으로 인구의 77%에 해당하였고, 해방 직후 부산을 포함한 경상남도의 경우 115만 8112명으로 78.9%[13세 이상 인구 대비]에 달하였다. 국민의 지지와 자발적 참여로 운영되는 근대 국가의 특성상 국민에 대한 훈육이 필수적인데, 이와 같은 80%에 가까운 높은 문맹률은 국가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남한에서 유일한 합법적 정부임을 자임한 미군정 역시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사회 교육 내지 성인 교육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군정청 학무당국은 1945년 12월 ‘성인교육위원회’를 조직하였고, 1946년 1월 학무국의 성인교육계를 ‘과’로 승격시켰다가, 같은 해 4월에는 ‘국’으로 개편하여 문맹퇴치를 위해 국문 강습회 운동을 전개하도록 하였다. 또 미군정청 문교부는 성인 교육을 적극 추진하기 위하여 성인교육사(成人敎育士)라는 새 직위를 만들어 전국의 군 단위로 남녀 각 1명씩 배치하기로 하였다.

[경과]

문맹 퇴치 교육 운동은 미군정 당국이 초등학교에 병설한 국문 강습소의 국문 강습회를 통해 활발히 전개되었는데, 1947년 1년간의 예만 보더라도 부산을 포함한 경상남도 전역에서 3,376회 개강하였으며, 이에 참여한 교원은 4,249명, 수강자 수는 31만 7792명이었다. 이외에도 당시 한창 설립되고 있었던 공민학교와 같은 비정규 학교나 사회 교육 기관도 큰 역할을 하였다.

부산의 경우, 부산부인회가 1946년 4월 4일 초량야학회를 개설하여 초량의 태고사에서 문맹 퇴치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한글전용촉진회 경남지회에서도 1949년 11월 28일부터 매주 월요일 동광동 소재 부산시립도서관에서 김계원, 정신득 등이 강사가 되어 월요 한글 강좌를 무료로 개설하기도 하였다.

[결과]

문맹 퇴치를 위한 성인 교육을 전국적으로 강력히 추진한 결과, 1945년 8월 31일 현재 문자 해독자가 전 인구의 21%에 지나지 않던 것이, 1946년 8월 31일에는 58%로 증가하였고, 1947년 8월 31일에는 71%까지 증가되었다.

[의의와 평가]

문맹 퇴치 교육 운동은 광복 후 문맹자의 문해 교육(文解敎育) 및 한글 바로 쓰기에 기여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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