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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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有蓋式二段透窓高杯 |
영어의미역 | Open Vessel with Stand |
이칭/별칭 | 절두 A자형 고배(截頭A字形高杯),절두 원추형 고배(截頭圓錐形高杯),유개식 유투창 고배(有蓋式有透窓高杯)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현주 |
[정의]
5세기 이후 부산 지역에 등장한 전형적인 신라 토기.
[개설]
유개식 이단 투창 고배(有蓋式二段透窓高杯)는 5세기 초부터 경주 지역 고분과 부산·창원 등 영남 일원에서 출토하기 시작한 고배의 한 형태로, 이후의 전개 과정에서 보면 신라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발달이 진행되어 전형적인 신라 토기의 한 유형으로 구분되었다. 대각부는 돌대(突帶)를 중심으로 상하단으로 구획하였고, 각 단에 장방형 투창을 서로 엇갈리게 배치하여 생긴 명칭이며, 절두 A자형 고배(截頭A字形高杯), 절두 원추형 고배(截頭圓錐形高杯), 유개식 유투창 고배(有蓋式有透窓高杯)로도 불린다.
[형태]
유개식 이단 투창 고배는 도질제 고배로, 몸통은 반구(半球) 모양이며, 외면에 형식적이든 그렇지 않든 뚜껑받이 턱이 있어 유개식(有蓋式)으로 분리된다. 즉 뚜껑받이 턱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의 경우에 뚜껑은 동반되지 않으며, 경주 지역에서는 단추형 꼭지를 가진 뚜껑과 동반하는 예도 있다. 고배 대각의 중간 부분은 침선(沈線) 혹은 단면 삼각형 돌대를 돌려 상단(上段)과 하단(下段)으로 구분하였는데, 각 단에는 장방형의 투창을 서로 엇갈리게 배치하였다.
[특징]
부산 지역의 유개식 이단 투창 고배는 신라 토기의 발생과 관련하여 중요한 단서들을 제시해 주는 유물 중 하나로, 일찍부터 주목하였던 기종이었다. 배부 형태는 접어두고 대각이 상하단으로 구분되기 시작한 것은 5세기 초에 해당하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 35·36호, 25·26호, 31·32호 출토품부터였다. 또한 5세기 전엽의 부산 복천동 고분군 21·22호 출토 고배는 무개식의 배부 형태를 가지나, 대각이 2단 혹은 3단으로 구획되면서 서로 엇갈린 방형 투창을 배열하였다.
부산 복천동 고분군 35·36호 출토품은 전형적인 유개식 이단 투창 고배의 형태를 가지나, 대각인 나팔상으로 벌어지며, 하단에만 장방형 투창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현상들은 5세기 전엽에 한반도 남부 지역의 사회적 여건과 이데올로기의 변화에 따라 활발한 물적·인적 교류가 이루어져 기존의 형식이 해체되고 새로운 형태를 시도하면서 만들어진 과정에서 나온 시작품(施作品)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부산 지역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경상남도의 가야 지역 전역의 보편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전형적인 유개식 이단 투창 고배의 출현은 부산 복천동 고분군 9호[동아대학교 발굴], 21·22호와 경주 황남동 109호 3·4곽 출토품부터였다. 반구형의 배부에 작은 돌대로 구분한 형식적인 뚜껑받이 턱을 가지며, 곡선으로 벌어진 나팔상의 대각 형태라는 공통성을 가지며, 부산 복천동 고분군 출토품의 경우 대각 하단에 원형 투창을 뚫은 점이 다르다.
신라 지역인 경주 월성로 가13호와 황남동 205호 출토품은 단추형 꼭지를 가진 뚜껑을 동반하였으며, 5세기 중엽 이후가 되면 유개식 이단 투창 고배는 대축소형 꼭지를 가진 뚜껑과도 동반하기도 하며, 대각은 직선적으로 뻗어 절두 A자형을 이루기도, 절두 원추형을 이루기도 한다. 이때부터는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 토기로 이 지역을 중심으로 양식이 통일되고, 이러한 양식이 주변 지역으로 확산되어 갔다.
[의의와 평가]
유개식 이단 투창 고배의 발생과 관련하여, 이를 신라 토기의 전형으로 보는 신라 고고학자들은 이 토기의 분포 지역을 신라의 영역이라고 보아 부산 지역도 신라라는 관점인데 비해, 가야 고고학자들은 부산과 경주 양 지역에서 동시에 발현한 형태이기 때문에 신라 토기의 전형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신라 지역에서 이전 시대와 연결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문제점을 제기하였다. 두 견해 모두 문제점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데, 전자는 토기의 분포 범위를 정치적 영역과 대응시키려는 시각이 문제이며, 후자는 토기 생산 과정과 소비의 관계에서 양 지역에서 동일한 규격의 제품이 동시에 발현하게 된 계기와 토기 제작공 간의 정보 네트워크가 이루어지게 된 원인 등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