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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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水營虞候先生案 |
영어의미역 | Record of Officials at the Garrison |
이칭/별칭 | 『경상좌수영 우후 선생안』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명희 |
[정의]
조선 후기 경상좌수영의 무관(武官) 임용자의 성명을 기재한 명단.
[개설]
선생안(先生案)은 일반 벼슬아치의 명부(名簿)이다. 문관은 이조, 무관은 병조에서 각각 성적을 매겨 포폄(褒貶)의 참고 자료로 활용하였다. 각 관아에서는 전임 관원의 주소, 성명, 관직명, 생년월일 등을 기록하여 비치하였다. 우후(虞候)는 각 도에 배치된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와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의 보좌관으로, 병마우후(兵馬虞候)는 종3품, 수군우후(水軍虞候)는 정4품이다. 『경상좌수영 선생안(慶尙左水營先生案)』에는 수사(水使)[수군절도사]의 명단과 그 보좌관인 우후의 명단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요컨대 『수영 우후 선생안(水營虞候先生案)』은 경상좌수사의 보좌관인 우후 임용자의 명단인 셈이다.
[편찬/간행 경위]
『경상좌수영 선생안』은 경상좌수영에서 간행하였고, 임진왜란 이후부터 1894년(고종 31)까지 경상좌수사의 이·취임 사항을 기록한 것이므로, 『수영 우후 선생안』도 같은 시기의 것으로 보인다.
[형태/서지]
『수영 우후 선생안』은 상단에 성명을 쓰고 그 아래 부임 및 교체 시기를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총 134명 중 전반부의 21명은 성명 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다. 이어지는 113명은 성명과 함께 부임 및 교체 시기를 기록하고, 본영(本營)에 재임하는 동안에 포상이나 징벌을 받은 경우에는 이에 관해서도 간략히 기록해 두었다.
[구성/내용]
총 134명 중 전반부의 전응충(全應忠) 외 20명은 성명만 기록되어 있다. 이어지는 이응징(李應徵) 외 112명은 성명과 함께 부임 및 교체 시기를 기록하였다. 수사나 우후는 중앙에서 파견하는 관리로서 수사 선생안을 작성할 때에는 보통 전임지나 직전(直前)의 직위(職位)를 표기하였다. 그러나 『수영 우후 선생안』에서 전임지나 직전 직위를 알 수 있는 사례는 8명뿐이다. 곡산 군수(谷山郡守), 도총부 도사(都摠俯都事), 중추부 도사(中樞俯都事), 중추부 경력(中樞俯經歷), 훈판(訓判) 등이 경상좌수영의 우후로 임명되어 왔다.
우후의 임기는 2년을 원칙으로 하되, 부임 및 이동에는 약간의 기일이 더 소요되었다. 드물지만 수사의 요청에 의해 부임 일자보다 몇 개월 앞서 일하기 시작한 사례가 1명 있고, 부모님의 상사(喪事)나 징벌로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교체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예를 들면 이윤하(李潤厦)는 맡은바 임무를 태만히 하고 급대(給代)[대가를 지급하는 일] 과정에서의 불법이 탄로나 부임한 지 2개월 만에 쫓겨났다. 박동수(朴東秀)는 상급 기관의 인부(印符)를 전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어 부임한 지 1년 남짓 만에 쫓겨 갔다. 성수영(成洙永)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으나 순찰사의 보고[狀啓]에 의해 쫓겨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좌수영에서 우후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상을 받은 것도 기록해 두었다. 이시운(李是橒)이 순무사(巡撫使)가 점검할 때 군기(軍器)를 잘 갖추어서 가자(加資)[정3품 통정대부 이상의 품계로 올려주는 것]된 것이 그 사례이다. 이정주(李廷周)도 군기 단속을 잘하여 상을 받았으며, 김석하(金錫夏)는 자신의 돈 700냥으로 군창(軍倉)을 채워 넣어 상을 받았다.
홍여한(洪汝漢)은 가을 훈련 때 서평포의 전선(戰船)이 오륙도 근해에서 침몰하자 이를 신속히 구조해서 가자되었고, 김성팔도 부산진의 전선이 오륙도 근처에서 침몰하자 이를 구조한 공로로 품계(品階)를 올려 받았다. 비슷한 사례가 13건 더 보이는 걸로 봐서 우후의 주요 임무가 군기를 단속하고 관청(官廳)을 보수하는 일, 군창을 점검하는 일, 선박이 침몰되었을 때 구조하는 일 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경상좌수영의 조직과 좌수영의 주요 업무를 통해 수영의 운영 모습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 수사의 부관인 우후의 임기와 포상, 징벌 내용을 통해, 조선 후기 지방 무관직의 실제 생활 모습과 그들의 위상을 살펴보는 데에도 시사점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