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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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泓 |
영어음역 | Bak Hong |
이칭/별칭 | 청원(淸源)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화진 |
[정의]
임진왜란 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낸 무신.
[가계]
본관은 울산(蔚山). 자는 청원(淸源). 할아버지는 박한(朴捍)이고, 아버지는 별제(別提) 박영무(朴英珷)이다. 어머니는 직장(直長) 정인걸(鄭仁傑)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홍(朴泓)[1534~1593]은 23세 때인 1556년(명종 11)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宣傳官)에 임명된 이후 강계부 판관, 종성 부사 등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경상좌도 수군절도사(慶尙左道水軍節度使)로서 좌수영(左水營)[동래]에서 왜군을 맞아 싸웠으나 수적 열세로 패하였다. 이에 박홍은 죽령으로 후퇴하여 적을 방어하려다 조령이 함락되는 바람에 다시 한성으로 물러났다.
박홍은 평양으로 피란 간 선조(宣祖)를 찾아가던 도중 도원수 김명원(金命元)을 만나 좌위대장(左衛大將)에 임명되어 임진강 방어 전투에 참여하였고, 신길(申硈), 유극량(劉克良) 등과 병사를 나누어 파주에서 왜군과 싸웠으나 패하여 평양으로 탈출하였다. 6월에 평양이 함락되자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과 함께 평산으로 들어가 병사를 모으던 중 강원도 이천(伊川)에 머물던 세자 광해군(光海君)의 부름을 받았다. 이에 세자를 호위 시종하면서 성천(成川)으로 옮겨 우위대장, 의용도대장(義勇都大將)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병조 참판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