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왜관도」[19세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104
한자 倭館圖
영어의미역 Picture of Waegwan[19th Century]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도
현 소장처 부산 - 부산광역시지도보기

[정의]

19세기 말 부산 초량 왜관 내의 건물과 이름들을 상세하게 기재한 약도.

[형태 및 구성]

「왜관도(倭館圖)」는 채색 필사본이며, 크기는 정확하지 않다. 묘사된 범위는 용두산 동쪽부터 용미산까지이다.

[특징]

초량 왜관은 조선 시대 일본과의 외교·무역에서 중심지 역할을 하였던 곳이다. 1544년에 다른 곳의 왜관을 모두 폐쇄하고 부산포에만 남겨 두었는데, 이후 몇 차례 장소를 옮겨 1678년에 초량 왜관이 지어졌다. 10만 평에 이르는 부지에 자리 잡은 초량 왜관은 가운데 용두산이 솟아 있어 이를 경계로 서관(西館)과 동관(東館)으로 나누어지는데, 「왜관도」의 중심은 용두산 동쪽의 동관이다. 화풍으로 보아 일본인이 그린 그림으로 추정되는 「왜관도」에는 초량 왜관 내의 건물의 위치와 규모가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왜관의 총책임자인 관수(館守)가 머무는 관수가(館守家)가 지도의 윗부분 중앙 용두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일본 사찰이자 외교 문서를 담당하는 동향사(東向寺)와 외교 교섭을 담당하는 재판이 머무는 재판가(裁判家)가 그 아래 오른쪽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지도의 좌측 하단에는 동서남북 방위 표시와 함께 왜관의 범위를 간수(間數)로 주기해 두었다. 왜관 내 각 장소의 명칭은 각 장소에 바로 기재하지 않고 부호를 사용하여 지도의 아랫부분에 기재해 두었다.

[의의와 평가]

1873년 일본 외무성에 의해 쓰시마[對馬]의 대조선 외교 업무가 중지되면서 폐쇄된 초량 왜관은 조선 후기 약 200년간 일본과의 외교와 무역을 담당하던 곳이다. 동관 내 건물을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왜관도」는 초량 왜관의 구조를 살펴보는 데 유용한 지도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