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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1078
한자 加德島倭城-
영어의미역 Site of Gadeok Island Waeseong Fortress
이칭/별칭 가덕도 왜성지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 635번지 일대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나동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성곽 터|왜성 터
소유자 개인
관리자 부산광역시 강서구청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7년 7월연표보기 - 한국문물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함
소재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 635번지 일대
출토 유물 소장처 한국문물연구원 - 부산광역시 사하구 하단동 1157-14지도보기

[정의]

부산광역시 강서구 눌차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왜성 터.

[개설]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 고바야가와 타카카게[小早川隆景]가 가덕도 일대와 안골만 주변의 수로 확보와 조선군의 공격으로부터 대비하기 위하여 축조하였다.

[위치]

가덕도 왜성 터강서구 성북동 선창 마을에서 동쪽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 눌차동 항월 마을 뒷산에 위치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거가 대교 공사 구간에 강서구 눌차동의 서북 지점이 포함되면서 2008년 7월 한국문물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 조사 결과 동서 방향으로 난 수굴(竪堀)[성벽과 수직으로 설치한 일본식 해자]이 확인되었고, 일본 유물인 고우가이[무사의 머리카락을 정리하거나 장식에 쓰이는 도구]를 수습하였으며, 성내에서는 조선 시대의 기와편이 출토되었다.

가덕도 왜성은 본성을 중심으로 여러 성곽이 능선을 따라 연접되어 있는 연곽식(連郭式)이다. 70m의 산 정상부를 삭평하여 석축으로 본환(本丸)[ 왜성 내에서 중심이 되는 공간]를 구축하였는데, 석축의 둘레는 86m이며 중심부에는 높이 2~3m의 석축이 잔존한다. 남쪽의 할미당을 중심으로 남북 방향으로 성벽이 축조되었고, 할미당이 있는 부분이 본환의 입구로 추정되며, 본환의 서쪽 벽은 성벽에 굴곡을 주어 치성(雉城)[성벽을 돌출시켜 성벽에 붙은 적을 측면에서 제어하는 시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본환의 남쪽으로는 가늘고 긴 지형이 계속되면서, 남쪽으로 갈수록 3~4단을 이루며 단의 동쪽과 남쪽 사면에는 1m 내외의 석축이 확인된다. 대지상으로 돌출되어 요곡륜(腰曲輪)[주 공간의 측면을 따라 길게 조성된 구역]을 이루고, 북쪽으로 연속된 66.5m의 산정부도 독립된 부곽으로 연결하여 축조하였으며, 서쪽으로는 수굴로 추정되는 골짜기가 있다. 또한 강서구 눌차동 항월 마을에서 서쪽으로 50m의 산정부도 왜성의 일부로 추정되나, 석축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현황]

본환의 석축은 대부분 잔존하고 있는 편이며, 남쪽과 동쪽은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주곽의 서쪽으로는 현재 민묘가 조성되어 있으며 왜성에서 이어진 북쪽 끝부분은 거가 대교를 건설하면서 파괴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임진왜란 때 일본군의 남해안 수로 확보를 위한 거점 중의 하나로, 가덕도 왜성의 지성[거점이 되는 본성을 지원하는 별개의 성] 과 함께 남해안 지역 왜성의 축조 수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한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가덕도에 머문 적이 있어 조선 수군의 제해권 장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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