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0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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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川洞古墳群 |
영어의미역 | Ancient Tombs of Deokcheon-do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 산40|50|60 |
시대 | 고대/삼국 시대,고려/고려 |
집필자 | 홍보식 |
[정의]
부산광역시 북구 덕천동에 있는 삼국 및 고려 시대의 고분군.
[위치]
덕천동 고분군은 낙동강 하류의 동안(東岸)으로 백양산의 서록(西麓) 끝자락에 위치한다. 낙동강과는 불과 500m 정도 떨어져 있고, 분묘는 해발 40~60m의 구릉에 집중적으로 분포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주택공사가 주관한 아파트 공사 과정에서 발견되었고, 1981년 1월 27일부터 4월 30일까지 부산시립박물관의 주관 아래 동아대학교 박물관과 동의대학교 박물관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분묘의 수는 총 69기가 확인되었다. 무덤의 종류는 소형 구덩식 돌널무덤 9기, 횡구식 돌방무덤 58기, 고려 시대의 분묘 2기이다.
[형태]
소형 돌널무덤은 구조가 구덩식인데, 벽은 큼직한 깬 돌을 세우거나 눕혀 쌓았고, 그 위에 작은 깬 돌을 눕혀 쌓았다. 석곽 바닥은 생토면이다. 앞트기식 돌방무덤은 덕천동 고분군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데, 지하에 만든 널방과 지상에 만든 널방 등이 있다. 지하에 만든 무덤의 석벽은 작은 깬 돌을 눕혀 쌓았다. 양 장벽만을 내경(內傾)시킨 형태와 양 장벽과 한쪽 단벽을 내경시킨 형태 두 가지 형식이 있다. 입구의 방향은 남향 또는 서향이 대부분이고, 남단 벽과 서단 벽에 설치되었다.
입구 형태는 단벽 전체를 입구로 이용한 것과 바닥에서 3~4단 쌓고 그 윗부분부터 입구로 이용한 것, 즉 창 구조의 형태 등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단벽 전체를 입구로 이용한 분묘는 시신을 매납하고 폐쇄할 때 할석을 바깥에서 채워 넣었기 때문에 벽면의 내면이 고르지 못하고, 바닥은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은 땅 그대로이다. 바닥에는 작은 깬 돌을 깔아 주검 받침대를 하였는데, 바닥 전면에 작은 깬 돌을 한두 겹 깐 것, 바닥의 양쪽 가장자리 부분을 제외하고 중앙부에만 깐 것, 양쪽 장벽에 붙여서 깐 것 등 다양하다. 석실에는 1회의 추가 매장이 되었고, 추가 매장마다 별도의 시상(尸床)을 설치하였다.
석실을 지상에 만든 무덤은 파괴가 심하여 그 전체 형태를 알 수 없다. 석실의 평면 형태는 장방형과 방형이 있다. 입구는 바닥에서 2~3단 쌓고 또 벽면의 좌우 부분을 쌓아 올리고 그 가운데 부분만을 입구로 이용한 형태이다. 바닥에는 작은 깬 돌을 깔아 시상대를 마련하였다. 시상대는 주축 방향과 직교하게 배치하고, 추가 매장은 보통 1회 이루어졌고, 추가 매장을 할 때마다 새로운 시상대를 만들었다.
[출토 유물]
67기의 삼국 시대 분묘에서 510여 점의 꽤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토기류가 430여 점, 철기류가 70여 점, 기타 장신구류가 10여 점이다.
[현황]
아파트 공사가 이루어져 지금은 분묘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의의와 평가]
덕천동 고분군은 6세기 전반에서 7세기 전반까지 약 1세기 동안 만들어진 소형 무덤들로 이루어졌다. 각각의 소형 무덤들은 규모가 비교적 큰 무덤을 중심으로 3~4기가 하나의 그룹을 이루고 있는데, 각 작은 그룹은 가족묘로 추정된다. 그리고 무구류와 장신구류의 매납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아 고분군을 만든 집단이 피지배층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