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032 |
---|---|
한자 | -貿易籠城事件 |
영어의미역 | Sit-down Strike at YH Trade Company |
이칭/별칭 | YH 사건 |
분야 | 역사/근현대,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1979년 8월 YH무역 노동자의 생존권 투쟁과 부산 지역 민주 세력의 지원.
[역사적 배경]
YH무역은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에 있던 가발 제조업체이다. 1966년 자본금 100만 원, 종업원 10명으로 설립한 작은 회사였으나 가발 경기의 호황과 정부의 수출 지원책에 힘입어 1970년대 초 종업원이 최대 4,000여 명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후 창립자인 장용호는 미국에서 백화점 사업체를 설립해 외화를 빼돌리는 한편,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였다. 마침 1978년 제2차 석유 파동 이후 가발 산업의 후퇴와 수출 감소로 경영이 어려워지자 장용호는 노동자를 감축하고, 이듬해 4월과 8월 2일 폐업을 공고하였다. 이에 1979년 8월 9일부터 11일까지 YH무역회사의 노동자 200여 명이 폐업에 반대하여 서울시 마포구의 신민당 중앙당사에서 회사 정상화와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농성 투쟁을 전개하였다.
[경과]
YH무역회사 200여 노동자의 농성에 대해 정부는 일방적으로 해산을 강요하다가, 8월 11일 새벽 2시 1,000여 명의 경찰을 신민당사에 난입시켜 폭력적으로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농성 중이던 YH무역 노조 간부 김경숙이 추락사하고, 나머지 노동자들도 강제 연행되었다. 또한 취재하던 기자와 신민당 총재 김영삼(金泳三) 및 신민당 소속 국회 의원과 당원들은 무차별 폭행을 당하였다. 이 사건 직후 폭력 진압과 강제 연행에 반대하는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고, 신민당 총재 김영삼과 신민당원들의 항의 농성이 이어졌다. 이 사건은 이후 김영삼 총재 제명 사건의 배경이 되면서 부산 지역에게 큰 정치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결과]
부산에서도 YH무역 농성에 대한 탄압과 김영삼 총재의 제명에 항의하여, 신민당 부산시당의 당원들이 부산직할시 중구 남포동에서 항의 농성을 벌였다.
[의의와 평가]
YH무역 농성 사건은 부산 시민들에게 유신 체제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이는 다음해 부산에서 촉발되어 마산으로 확산되어 유신 정권의 조종을 울린 1979년 부마 항쟁의 원인 가운데 일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