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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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永進 |
영어음역 | Yang Yeongjin |
분야 |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산성로 872[장전동 산30]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차성환 |
[정의]
1988년 부산대학교에서 투신 자결한 학생 운동가.
[가계]
본관은 남원(南原). 1967년 3월 16일 경상남도 함양군 백전면 경백리 상대평 318번지에서 아버지 양태옥과 어머니 정봉순의 3남 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양영진(梁永進)은 초등학교 졸업 후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이주하였다. 1983년 2월 해운대중학교, 1986년 2월 동래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6년 3월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부산대학교에서 양영진은 학생 운동에 참여하였고, 시작(詩作) 활동을 하면서 문학 운동에 매진하였다. 1988년 3월 국어국문학과 학술부장으로 선출된 이후 『부대 문학』이란 학생 문예지 활동을 통해 학생 운동과 문학 운동을 결합하려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88년 3월에 군사 정부의 대학생 군사 훈련의 일환인 전방 입소를 거부하고, 4월에는 훈련소에서 퇴소당한 44명 중의 한 사람으로 이 문제에 대한 항의로 부산대학교 총장실을 점거하여 농성을 벌였다. 6월에는 남북 학생 회담을 추진하는 학생 운동의 열기 속에서 『부대 문학』이 주관하는 통일 시(詩) 공동 창작 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같은 해 8월에 양영진은 8·15 남북 청년 학생 회담의 성사를 위해 선전대 활동에 참여하였다. 그러던 중 8월 9일에 갑작스런 입영 통지서를 받고 8월 10일 훈련소에 입소하였다. 전격적인 입영은 전방 입소 거부에 대한 보복의 성격이 짙었다. 양영진은 방위병으로 근무하던 중 분단 현실에 대한 분노를 이기지 못해, 군대와 미국을 비판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유서를 남긴 후 1988년 10월 10일 부산대학교 재료관 5층에서 투신 자결하였다.
[저술 및 작품]
100여 편의 유고 시가 있으며, 이를 모아 사후에 추모 시집, 『식민의 땅에 들불이 되어-민족 해방 열사 고 양영진 추모집』[친구, 1988]을 출간하였다.
[묘소]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의 민족 민주 열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92년 11월 3일 부산대학교 제2도서관[구 중앙도서관] 앞뜰에 학우들이 모금으로 마련한 추모 시비를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