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981 |
---|---|
한자 | 愼鏞吉 |
영어음역 | Sin Yonggil |
분야 | 문화·교육/교육,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사하구 괴정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순욱 |
[정의]
부산 지역에서 활동한 교사이자 시인.
[활동 사항]
신용길(愼鏞吉)[1957~1991]은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3년 부산 경남중학교, 1976년 동아고등학교, 1982년 부산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부산대학교 재학 시절 신용길은 부대문학회에 가입하여 시를 썼다. 대학 졸업 후 주례여자중학교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조홍, 박치환, 조향미 등과 『가락』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1986년 부산과 경남 지역의 문학적 소통을 강화할 목적으로 결성된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의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교사이자 시인인 조향미와 혼인한 것도 그 무렵이다.
1987년 9월 26일 ‘6월 민주 항쟁’의 열기를 기반으로 부산교사협의회가 결성되자 신용길도 가입하여 민족 교육·민주 교육·인간화 교육에 대한 신념을 행동으로 옮겼다. 부산교사협의회 문화 부장을 맡아 조직 운동가다운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1989년 8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약칭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전국에서 1,500여 명의 교사가 쫓겨날 때 신용길도 파면되었다. 전교조 부산지부 결성식에서 축시를 낭송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신용길은 부당한 해고에 맞서 출근 투쟁을 벌이다가 경찰에 구속되었다. 유치장에서 꽁보리밥에 단무지 세 쪽이 전부인 식사를 거부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던 중 위궤양으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1989년 병 보석으로 출옥하여 전교조 부산지부 사무 차장과 교과 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참교육 강좌’, ‘지역 사회 교육’ 공청회, ‘공동 수업안 시범 수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었고, 부산교과연합 준비모임을 결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1989년 여름 교육 대학살’로 불린 시기에 해직된 안도현(安度眩), 도종환(都鍾煥), 이광웅(李光雄), 정영상 시인 등과 교육 시의 우뚝한 봉우리를 형성하였다. 1990년 11월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 끝에 이듬해 3월 9일 세상을 떠났다. 임종 직전 안구를 기증하였다.
[학문과 저술]
1987년 시인 김춘수(金春洙)의 추천으로 『현대 문학』 12월호에 「엽서」 외 2편의 시가 실려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묘소]
신용길의 묘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 솥발산 공원묘지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91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제정한 제2회 ‘참교사상’이 추서되었고, 2004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 의해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다. 1992년 구덕고등학교 제자와 후배를 중심으로 ‘신용길 선생님 추모사업회’가 만들어져 매년 3월 추모제를 열고 있다. 유고 시집 『홀로된 사랑』[실천문학사, 1991], 전집 『브레히트를 생각하며』[전망, 2006]가 나왔으며, 2008년 3월 22일 부산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신용길 시비가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