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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824
한자 林河守
영어음역 Im Hasu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구모룡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시인
성별
출생 시기/일시 1927년 3월 15일연표보기 - 출생
황동 시기/일시 1954년 - 『민주 신보』 입사
몰년 시기/일시 1960년 1월 1일연표보기 -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73년 - 『부산 문학』에 시 게재
출생지 부산 -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지도보기
거주|이주지 부산 - 부산광역시지도보기
수학|강학지 초량상업학교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1동지도보기
활동지 『조선 일보』 인천지사 - 인천광역시
활동지 『민주 신보』 - 부산광역시
활동지 『주간 국제』 - 부산광역시
활동지 『상공 시보』 - 부산광역시

[정의]

1950년대 부산에서 활동한 시인.

[가계]

아버지는 임사용(林士用)이고, 어머니는 허순명(許順明)이다. 형은 진보당 출신의 혁신 정치인 임갑수(林甲守)와 임찬수(林讚守)이다. 누나는 임두리(林斗里)이며, 여동생 임태순(林泰順)이다. 부인은 안명순(安明順)이다. 자녀는 3남 1녀를 두었다.

[활동 사항]

임하수(林河守)[1927~1960]는 1927년 3월 15일에 할아버지 대부터 살았던 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의 중농(中農)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부산초량상업학교[현 경남공업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졸업 후 삼촌이 경영하는 솜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형 임갑수와 함께 인천으로 갔다. 임하수는 당시 죽산(竹山) 조봉암(曺奉巖)과 교류하던 형에게서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45년 솜 공장이 화재로 문을 닫자, 광복 직후 조선일보 인천지사에서 일하게 되었다. 1949년 2월 7일 부산 광안리에 사는 안명순과 혼인하여 부산으로 거주지를 옮겼으나 1950년 일어난 6·25전쟁 등으로 가난한 생활이 계속되었다.

비리와 편법이 판치던 자유당 정권 아래서 혁신적인 정치 이념을 갖고 있었던 형 때문에 임하수는 원고조차 보관할 수 없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1954년부터 1958년까지 『민주 신보』, 『주간 국제』, 『상공 시보』 등에서 근무하면서 힘껏 가족을 부양하는 한편, 긍정적인 자세로 삶을 이어 갔다.

시대에 대한 불안 의식과 내면의 따스함은 작품 속에서 어둠, 절망, 한(恨) 등으로 표출되었다. 임하수의 시는 서정성을 바탕으로 주관적인 정조와 더불어 인간애를 품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불행하게도 지금껏 알려진 시는 20여 편에 불과하다. 1960년 1월 1일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저술]

「황혼에」, 「꽃」 등 20여 편의 시가 1973년 발간된 『부산 문학』에 실렸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최** 자녀는 1남3녀로 알고 있습니다. 2017.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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