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7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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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成熺 |
영어음역 | Gim Seunghi |
이칭/별칭 | 동우(東愚) |
분야 | 정치·경제·사회/정치·행정,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남구 우암로 36[감만동 29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용하 |
[정의]
부산 출신의 정치학자이자 제7대 국회 의원.
[가계]
본관은 김녕(金寧). 호는 동우(東愚). 아내 윤두리(尹斗理)와의 사이에 김구연(金九淵), 김미경(金美京), 김미연(金美淵)을 두었다.
[활동 사항]
김성희(金成熺)는 1920년 5월 12일 부산에서 태어났다. 1938년 부산 동래고등학교를 졸업[15회]하고, 1942년 경성제국대학 예과 문과 갑류를 졸업하였다. 이후 1944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여 법학사가 되었고, 1968년에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46년 김성희는 갓 개교한 부산대학[현 부산대학교]에서 조교수로 교단에 섰다. 당시 김성희는 인문학부 내의 16명에 불과했던 전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서양사 전임 교수로 재직하였다. 1951년 6·25 전쟁 때에는 전시연합대학과 부산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이 무렵 부산대학 야간학부에 개설된 김성희 교수의 ‘근대 정치학설사’는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함께 임용된 전임 교수들이 학내 보직 활동을 많이 하였으나, 약관의 김성희는 강의 활동을 중심으로 할 뿐, 학내 행정에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1951년 부산대학을 종합 대학으로 승격시키려는 ‘신종합대학안(新綜合大學案)’이 제출되었다. 이를 둘러싸고 학내 교직원 간의 이견이 노출되는 상황이 발생했는데, 대학의 운영 문제로 학장과 의견이 맞지 않았던 김성희는 1952년 4월 부산대학 교수직을 사임하였다.
이후 김성희는 1953년 서울로 이주하여 동국대학교 교수가 되었으며, 1956년부터 1964년까지는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부교수와 교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김성희는 공화당에 입당하여 정치인으로 변신,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제7대 국회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하지만 1972년 다시 교단으로 돌아와 1979년까지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1973년에는 한국정치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1976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였다. 1979년 청주대학[현 청주대학교]으로 자리를 옮겨 1980년 퇴임할 때까지 청주대학 학장으로 활동하였다. 2006년 4월 29일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대표 저술로 『정당론』[1957]과 『구미 정치사』[1978]가 있다. 『정당론』에서 김성희는 정당 연구의 방법론을 확립하고, 정당의 발생 및 대립에 관한 이론, 정당과 여론 및 국민의 정치의식과의 관계, 단체 또는 조직으로서의 정당의 특징, 정당과 정치 제도와의 상호 관계, 정당법 및 선거법과 같은 정당과 관련한 입법 등에 대한 최신 경향을 집대성하였다. 『구미 정치사』는 유럽과 미국의 주요 정치적 사건, 정치 기구, 정치사상과 사회와의 관계를 통해 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을 서술하였다. 특히 후발 국가의 민주주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나는 시행착오를 한국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을 강조하였다.
이외에 주요 저서로는 『근대 서양 정치사』[1955], 『정치사』[1961], 『정치의 세계와 정당의 공간』[1990]이 있다. 『한국 정치학 대사전』[1975] 편찬에 대표 편집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