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428 |
---|---|
한자 | 姜白川 |
영어음역 | Gang Backchen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금강로153번길 70[온천동 8-5]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종세 |
[정의]
1970년 이후 부산에서 활동한 시나위더늠 대금산조를 만든 명인
[활동]
강백천은 1898년 전라남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대금 시나위를 잘 불었다. 1914년 박준필에게 대금으로 풍류를 익힌 후 남도 시나위 가락에 심취했다. 대금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정악합주를 주로 연주하는 풍류젓대이고, 다른 하나는 주로 무속음악(시나위)이나 산조를 연주하기 위한 시나위젓대이다. 대금산조는 이 시나위젓대로 연주되는 산조음악을 이르는 것이다.
산조는 다양한 가락의 변화와 대금 특유의 기법을 통해 인간의 희노애락을 유감없이 표현함으로써, 고도의 기교와 예술적 감각을 통한 수준 높은 음악을 구가하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현재 대금산조는 박종기(朴鍾基)[1880~1947년]류의 「소리더늠 대금산조」와 강백천류의 「시나위더늠 대금산조」의 두 가지 유파가 전해지고 있다. 특히 강백천은 대금산조를 먼저 짰다는 진도 출신 박종기와 교분이 있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당시 현악에만 있던 산조를 발전시켜 남도 시나위에 뿌리를 둔 시나위더늠 대금산조를 짰다. 그의 대금산조는 박종기 대금산조의 우조 덜렁제와 같은 판소리에 바탕을 둔 소리더늠에서 발전하여 육자배기 가락을 토대로 한 시나위더늠이다.
강백천은 평생을 초야에 묻혀 자신의 음악으로 수양을 쌓아온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1970년 부산에 자리잡고 후진을 양성했다. 강백천 대금산조의 이수자는 김동표(金東表) · 송부억소(宋富憶釗) · 이엽(李葉)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김동표는 강백천의 승계자이자 예능보유자로 동래에서 활동하면서 후계자 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강백천은 1982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7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