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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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博文堂書店 |
영어의미역 | Book Store 'Bakmundang' |
이칭/별칭 | 박문당,길전박문당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동|중앙동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동철 |
[정의]
1906년 일본인이 부산 지역에 설립한 서점.
[개설]
길전시차랑은 일본 신사현(新潟縣) 출신으로 1904년 11월 조선에 왔다. 1905년 1월 경상남도 밀양 남문 밖에 조그만 잡화매약점(雜貨賣藥店)을 개업하였다. 길전시차랑은 한국의 발전을 헤아려, 앞으로 서적상이 유망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석흑충덕(石黑忠悳)[호 황옹(况翁)] 자작과 동경 박문관(博文館) 관주 대교신태랑(大橋新太郞) 등의 지도를 받고, 1906년 4월 16일 부산부 대청정(大廳町) 3정목 101번지에 서점인 길전박문당(吉田博文堂)을 개점하였다. 대교신태랑에게서 200원 정도의 상품을 빌리고 집을 임대하여 서점을 열었다. ‘박문당’이란 이름은 박문관을 따서 대교신태랑이 지은 것이다.
[변천]
부산매축주식회사의 북빈[북항] 매축지인 부산부 대창정 5번지에 일본식 본관을 지어 1915년 2월 16일 새로 이전하였다. 대창정에 있을 때의 건물은 2층 일본식 목조에 기와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길전박문당’, 측면에는 ‘서점 길전박문당’이라 쓴 상호 간판이 걸려 있었다. 1915년 대창정에 신축한 건물은 2층 일본식 벽돌에 기와지붕 건물로, 우측 전면에 첨답형 3층이 부분 돌출된 구조였다. 전면 2층 난간에 ‘박문당’이라는 글자가 걸려 있었다.
1927년 본관 옆 부산부 대창정 3정목 8번지에 현대식 신관 공사에 착공하여, 1928년 신관이 완공되었다. 신관 공사와 함께 본관도 현대식 건물로 개축한 것 같다. 신관의 설계와 건축은 서본리삼랑(西本利三郞)이 담당하였다. 1928년 증축된 본관은 서적부, 신관 1층은 문방구부, 2층은 악기부와 운동구부, 3층은 기계표본부가 있었다. 4층은 옥상으로 전망대와 담화실이 있었다. 본관 정면에는 박문당서점, 신관 정면에는 박문당이란 상호가 걸려 있었다. 신관의 박문당이란 상호는 석흑충덕이 1928년 1월에 대리석에 쓴 것이다. 1928년 9월 당시 전화번호는 735번과 2442번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박문당서점은 서적, 교육품 및 국정 교과서 특약 판매를 주요 사업으로 하였다. 대청정에 서점이 있을 때는 ‘문부성 국정교과서 특약판매소’와 ‘조선 총독부 교과서 원매팔소(元賣捌所)’라는 선전 간판이 서점 정면에 걸려 있었다. 즉 국정 교과서의 6개 도[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전라북도, 충청남도, 충청북도] 특약 판매소로서 270여 개의 공립 소학교 교과서 공급을 맡고 있었다. 동경박문관에서 출판한 도서와 잡지의 판매처 활동도 하였다. 서적, 문방구, 악기, 운동 기구, 기계 표본 등 다양한 용품을 판매하였으며, 서적을 직접 발행하기도 하였다.
1931년에 창립된 부산에 거주하는 아마추어 고고학자의 연구회인 부산고고회는 박문당서점에서 1931년 10월 10~13일 고고 자료 전람회, 1932년 6월 18~22일 조선 도기(陶器) 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점주의 장남 길전신일(吉田新一)이 부산고고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박문당서점은 부산 지역사 관련 자료의 전시 공간 기능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박문당서점은 서적의 판매[출판] 및 문구, 악기, 운동 기구, 학습 기자재 판매는 물론 전망대, 전람회장 등 종합적인 문화 공간 기능을 한 일제 강점기 부산의 대표적인 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