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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산항 견취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343
한자 浦山港見取圖
영어음역 Posanhang Gyeonchido
영어의미역 Busan Harbor Seen from the Japanese Settlements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장순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도
서체/기법 채색
소유자 이태희
제작 시기/일시 1881년연표보기 - 제작
현 소장처 부산근대역사관 - 부산광역시 중구 대청로 104지도보기
원소재지 아드리아호텔 - 대전광역시 유성구 봉명동 442-5

[정의]

개항기 부산의 일본 전관 거류지를 그린 왜관 지도.

[형태 및 구성]

「포산항 견취도(浦山港見取圖)」는 1880년대 왜관 안밖의 모습을 상세하게 그린 세로 98㎝, 가로 147.5㎝ 크기의 왜관 지도이다. 지금의 용두산을 중심으로 한 전관 거류지 내 일본인들의 공공 기관과 상가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제작은 근세 왜관이 일본의 전관 거류지가 된지 5년이 지난 해인 1881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작자는 미상이다. 다만 지도상으로 화법이나 글씨체, 그리고 지도 안에 쓰인 기록 등을 살펴볼 때 그림을 그린 사람은 일본인으로 추정되며, 본래는 축정일(祝定一)이라는 일본인의 소유였던 것으로 보인다.

「포산항 견취도」는 6장의 화선지를 연이어 붙여서 그린 일본식 채색화로 단순히 회화적인 풍경화라기보다는 누군가 왜관에 관한 기록을 목적으로 그린 기록화의 성격이 강하다. 「포산항 견취도」에는 왜관 내 거주자들의 이름이 꼼꼼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견취도(見取圖)’라는 지도의 명칭에서도 잘 나타난다. 따라서 이 그림은 전관 거류 지역의 대략적인 개요도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전관 거류 지역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재산권 침해 요소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나 전관 거류지에 관련된 어떤 의도 하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특징]

「포산항 견취도」용두산을 중심으로 일본인 전관 거류지를 중앙에 배치하고 절영도와 오륙도, 대마도까지 담았다. 그리고 그림의 상하 여백에는 근세 왜관의 성립과 부산포에 왜관이 위치하게 된 경위, 두모포에서 초량으로의 왜관 이전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들을 간략하게 기록하였다. 당시 절영도에는 목장이 있었는데, 몇 마리의 말들이 노닐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논밭에는 한복을 입은 조선인들이 외출하는 모습과 소를 몰고 밭을 갈거나 지게를 지고 농사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부산 앞바다에는 일장기를 달고 있는 커다란 기선(汽船)이 정박해 있고, 주변에는 초라한 조선의 배들이 고기잡이하고 있는 모습이 대조적이다. 해안가에는 요릿집과 기생집도 있었던 모양이다. 요릿집 6곳과 기생집 9곳, 화장품 가게와 매독 병원도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매립하기 전 부산 해안가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부산의 옛 시청이 있던 용미산을 비롯해 복병산용두산에서 흘러내려 부산항으로 흘러내리는 개천[지금의 광복동 대로 자리]과 지금은 복개된 보수천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의의와 평가]

「포산항 견취도」는 부산이 일본 조계화된 직후인 1881년에 작성된 것으로, 당시 왜관 내부의 상황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해 놓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지도는 왜관 내의 산천(山川)이나 경계, 당시 조선에 도항해와 그 지역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이름 내지 조선에 들어와 있던 일본인들의 관공서 및 회사, 그리고 상점들에 대한 기록이 함께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왜관 지도는 단지 일본 조계지로서 모습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 않은 근세 왜관의 내부 구조를 추적할 수 있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더불어 근세에서 근대로의 이행 과정에서 부산 시가지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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