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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왕복 서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00295
한자 韓國往復書類
영어음역 Hanguk Wangbok Seoryu
영어의미역 Documents of Japanese Visit to Korea
분야 역사/근현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부산광역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하지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도서
간행자 왜관
권책 1책
규격 26.5×18㎝
간행 시기/일시 1872년연표보기 - 간행
소장처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월드컵대로 462지도보기

[정의]

1872년 조선과 일본의 외교 관계 회복을 위해 부산에서 양국 관원이 주고받은 서한을 모아 엮은 책.

[편찬/간행 경위]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 이후 일본은 조선으로 왕정복고 사실을 알리는 사절단을 보냈으나, 조선 측에서는 그들이 가지고 온 외교 문서가 서계(書契)의 형식 및 용어가 구규(舊規)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접수하지 않았다. 이 서계 사건으로 일본 외무성과 조선 간의 외교 교섭이 실패로 돌아가자, 메이지 정부는 쓰시마[對馬] 도주(島主)인 소 시게마사[宗重正]에게 이에 대한 수습을 지시하였다.

소 시게마사는 쓰시마 번[對馬藩] 관리인 사가라 마사키[相良正樹]를 전사(專使)로 임명하여 외무성 관리인 모리야마 시게루[森山茂]와 히로쓰 히로노부[廣津弘信]와 함께 부산으로 파견했는데, 이들이 부산에 도착한 것은 1872년 1월 14일이었다. 『한국 왕복 서류(韓國往復書類)』는 사가라 마사키 일행이 부산에 도착한 1872년 1월 14일부터 5월 말까지 왜관 통역사인 도간전(都幹傳) 우라세[浦瀨最助]를 시켜, 훈도(訓導)와 별차에게 보낸 서한과 그에 대한 회신을 모아 1872년 왜관에서 기록으로 남겨둔 것이다.

[형태/서지]

1책 54장의 백판심(白版心) 문서로, 내변(內邊)은 가로 20.3㎝, 세로 14.5㎝이고, 책 크기는 가로 26.5㎝, 세로 18㎝이다. 옛 한글과 한문이 혼용된 국한 혼용문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글 옆에는 일본어로 해석을 달아놓기도 하였다. 본래 왜관과 부산 일본 총영사관에서 소장해 오다가 현재 사본이 부산광역시립시민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50장의 문서에는 1872년 1월 14일부터 5월 24일까지 양국 관원 사이에 왕래한 서한 47통이 수록되어 있다. 구체적으로는 도간전과 간전관(幹傳官)이 훈도에게 보낸 서한이 14통, 가훈도(假訓導)에게 4통, 차사에게 1통, 통사에게 1통이고, 훈도가 도간전과 간전관에게 보낸 서한이 11통, 가훈도에게 보낸 서한이 5통이다. 별차가 전어관(傳語官)에게 보낸 서한이 1통, 안동준(安東晙)이 빈일헌(賓日軒)에게 보낸 서한이 1통, 왜관사(倭館司)의 전갈문(傳喝文)이 1통, 차비관이 도간전과 간전관에게 보내 서한이 1통, 차서(差使) 시가라의 구진서(口陳書) 1통을 비롯해 통사 최재수(崔在守)와 도간전·간전관과의 왕복 서한이 수록되어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인사를 나누는 일상적인 것부터 면담 일정을 정하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양국 관원이 느꼈던 점 등이다.

[의의와 평가]

부산의 왜관은 조선 후기 조일 간의 외교와 무역이 진행되던 유일한 장소로, 당시 양국 관원들이 주고받은 외교 서한을 모은 『한국 왕복 서류』는 조선 후기 양국 간의 외교 관계를 살펴보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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