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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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文鳳厦 |
영어음역 | Mun Bongha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웅천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숙경 |
[정의]
조선 후기 부산 기장 지역에 살았던 향반(鄕班).
[가계]
본관은 남평(南平). 아버지는 문의노(文義魯)로, 기장 철마 남평 문씨(南平文氏) 종갓집의 장손이었다. 어머니는 월성 김씨(月城 金氏)로 김상구(金商龜)의 딸이다. 부인은 김해 김씨(金海金氏)로, 김지언(金之彦)의 딸이다.
[활동 사항]
문봉하(文鳳厦)[1842~1896]는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에 살았던 향반이다. 1860년(철종 11) 향교의 이장의(二掌議)가 되었고, 1877년(고종 14) 36세에 향교 도유사(都有司)를 지냈으며 51세에 별임(別任)을 맡았다. 1888년(고종 25)과 1891~1893년에는 기장향교의 석전제(釋奠祭)에 헌관으로 참석하였다. 1891년(고종 28) 50세에는 면상유사(面上有司)를 맡았다.
문봉하는 오방(五房)을 하여 가족을 부양하였다. 오방은 오방재가(五房在家)의 준말로 집 안에 담배쌈지, 바늘, 실 따위를 벌여 놓고 팔던 잡화 가게를 이른다. 이는 문봉하가 양반 계층이 꺼리는 상업에 종사하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봉하의 상업 활동은 후손들이 경제적 기반을 다지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남평 문씨 집안에 호구 단자(戶口單子)[호주가 가족 사항을 적어 지방 수령에게 신고하던 서류]와 차첩(差帖)[임명, 해임 등의 내용이 적힌 사령장] 등 13여 점의 유물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