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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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島遊錄 |
영어의미역 | Doyurok |
이칭/별칭 | 『청산 도유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엄경흠 |
[정의]
1811년 부산포에서 출발한 대일 통신 사행 김선신(金善臣)의 시문집.
[저자]
김선신[1775~1855년 이후]의 본관은 선산(善山)이며, 호는 청산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나 수학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으나, 어려서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났고 성품이 강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선신은 형 김선민(金善民)이 중국에서 돌아온 직후인 1805년 윤6월 중국에 가게 되는데, 목적지는 북경(北京)이 아닌 심양(瀋陽)이었다.
『순조실록(純祖實錄)』에 의하면 이 해 중국에 연행사를 파견한 것은 황제가 심양의 소릉(昭陵)에 제사를 지내러 왔기 때문이었다. 중국에 다녀온 지 몇 년 지나지 않은 1811년에 통신사 정사의 서기로 일본에 가게 되었다. 당시 정사였던 김이교(金履喬)가 그를 추천하였던 것이다. 그가 통신사의 서기로 추천받고 선발되었다는 것은 그의 문재가 사람들에게 널리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1811년 통신사는 에도[江戶]가 아닌 대마도에서 이루어졌고 기간도 짧았으며 인원도 대폭 축소된 사행이었으나, 당시 조선 문인들이 만난 일본 문인들은 모두 저명한 인물들이었다. 김선신은 이들과 만나서 적극적으로 필담을 나누며 교유를 맺었고, 일본 문인들의 문집이나 저서에 서발(序跋)을 써주기도 하였다. 또한 김선신은 조선의 시와 글씨 등을 가지고 가 일본 문인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하는 등 적극적인 교유를 하였다. 통신사에서 돌아온 2년 뒤인 1813년 아버지 김사범(金師範)과 형을 잃었다. 1822년에 그는 동지사 김노경(金魯敬)의 군관으로 연행에 참여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도유록(島遊錄)』 또는 『청산 도유록(淸山島遊錄)』은 1811년(순조 11) 정사(正使) 김이교, 부사(副使) 이면구(李勉求), 제술관(製述官) 이현상(李顯相) 등이 참여한 일본 사행의 기록이다. 사행 때 썼던 기록을 바탕으로 사행 이후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개작하였다.
[형태/서지]
2권[권7, 8] 78장으로 되어 있으며, 각 권에 ‘해행시첩(海行詩帖)’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책의 크기는 세로 17.8㎝, 가로 15.4㎝이며, 어미나 판심제, 권수제가 없는 필사본이다.
[구성/내용]
『도유록』은 「박대마도부(博對馬島賦)」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 사행 기간 중에 지어진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시와 편지, 서문 등 약 200편의 작품이 실려 있는데, 이 가운데 시가 약 180편에 이른다. 말미에 실려 있는 「박대마도부」는 김선신의 대표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김선신은 「박대마도부」를 열흘 만에 완성했다고 하였는데, 그 분량과 내용을 보면 열흘이라는 시간도 놀랍거니와, 김선신의 장고(長考)하는 시작 태도에 비해 보면 더욱 이례적이다. 글 상단에 ‘석(石)’, ‘목(木)’ 등의 주제어가 기입되어 있는데, 이는 후대 사람이 기입한 것으로 보인다.
「박대마도부」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다. 부의 첫머리에는 우(禹) 임금의 치수(治水)를 언급하고, 바다를 이야기하고, 섬을 말하고, 그 뒤에 비로소 대마도를 노래하기 시작한다. 대마도의 흙, 돌, 나무, 꽃, 식물, 동물, 광물, 의복, 풍속, 음악 등을 비롯하여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 같은 대마도의 인물을 소개하고, 조선 사신들이 묵었던 사관(使館)이나 1811년 사행에 대해서도 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