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2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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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慶尙監營關牒 |
영어의미역 | Appointment Certificate for Gyeongsang Provincial Office Governor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양흥숙 |
[정의]
조선 후기 동래부의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비변사에서 경상 감영으로 보낸 관문을 모은 책.
[형태/서지]
『경상 감영 관첩(慶尙監營關牒)』은 1785년(정조 9) 4월 11일부터 1787년(정조 11) 5월 21일까지의 관문(關文)을 모은 것이다. 현재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1785년 기록에는 김해의 결전(結錢), 밀양의 환곡, 통영 곡물 무판(貿販)의 폐단을 비롯하여, 경상북도 영양 둔전(屯田)의 수세, 김해 양산 노전(蘆田)의 수세 가징(加徵), 영남 가산(架山) 남창채(南倉債)[남창은 조선 후기 금위영·어영청·균역청에 딸린 창고로, 주로 군량미를 저장하였다] 징수 등 영남 각 지역의 문제를 비변사에서 의논하고 경상 감영으로 보낸 내용들이다. 특히 영남 지역의 환곡 운영과 관련된 내용이 많다. 그리고 오늘날 장유와 진례 지역에 해당되는 신문(新門)·청천(晴川) 두 진(鎭)을 옮길 때 발생한 모군(募軍)과 그 처우 등에 대한 내용도 있다. 그 외 전국적으로 운영되는 감영의 이획(移劃)[이곳의 전곡(錢穀)을 저곳으로 옮기는 것]을 금지시킨다거나, 궁방에서의 시곡(柴穀) 재촉 문제 등 영남에 국한되지 않는 일반적인 사안도 있다.
1786년(정조 10) 기록에는 일본에서 바치는 진상(進上)과 관련한 동래 부사의 보고로 시작한다. 진상물을 서울로 보내는 과정에서 감색(監色)의 누락 행위 등을 알리고 이를 징수하는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 들여오는 공무역 수입품에 대한 결제품인 공목(公木)을 작전(作錢)하고, 삼전조(三錢條) 징수와 그 배분 문제, 진상 감색의 포흠(逋欠)[관청 물건의사용과 은닉, 조세 미납 등으로 발생한 결손분 ]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786년 2월 30일, 경상 감영에 도착한 관문에는 왜관 화재와 관련하여 구휼하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왜관 개시 대청 39칸, 공일대관왜가(公一代官倭家) 90칸, 공대관왜회계가(公代官倭會計家) 30칸, 별대관왜회계가(別代官倭會計家) 15칸, 합 174칸이 모두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왜관에 화재가 났을 때 구휼하는 목면과 쌀 수효에 대한 규례가 없어 비변사에서 감영으로 결정을 내린 내용이다.
불에 탄 가옥은 모두 공무 수행을 위해 왜관에 온 일본인으로 보통의 일본인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1713년(숙종 39) 예에 따라 목면과 쌀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그 외 영남 지역의 가렴, 수해로 인한 수세 조정, 전정(田政) 문란, 군향(軍餉)을 빌려가서 갚지 않는 것, 양정(良丁) 투탁 문제, 황구 백골(黃口白骨)이 난무하는 군정(軍丁)의 문란, 속리산을 비롯한 명산대찰(名山大刹)의 승역(僧役) 문제, 고성 옥천사의 종이 생산과 첩역(疊役) 건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1787년 기록에는 송상(松商)의 종이 잠매(潛賣), 밀도살 성행과 우육(牛肉)의 유통, 환곡의 폐단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후반의 전정(田丁), 군정(軍丁), 환곡(還穀)의 문란상을 영남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또한 왜관, 조일 관계 업무를 전담하는 동래부는 예단품, 무역품이 수합되는 지역이므로, 많은 물량을 이용하여 감색 등 중간 계층의 포흠 양상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그리고 조일 교류가 안정되면서 기본 약조에는 없는 사안이 발생할 때 조정에서 감영을 통해 동래부로 지시하는 대응 양상도 찾을 수 있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