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1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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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奉使日本時聞見錄 |
영어음역 | Bopngsa-ilbonsi Mungyeonnok |
영어의미역 | 1748 Travelogue of Jap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상기 |
[정의]
1748년(영조 24) 부산 두모포진(豆毛浦鎭)에서 출발한 무진 사행(戊辰使行) 때 조명채(曹命采)가 쓴 사행록.
[개설]
1748년 2월부터 윤 7월까지 6개월간의 무진 사행(戊辰使行)에서 통신사인 홍계희(洪啓禧), 부사 남태기(南泰耆)와 함께 삼사신(三使臣)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종사관(從事官) 조명채가 견문을 기록한 것이다.
[저자]
조선 후기 문신인 조명채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주경(疇卿), 호는 난곡(蘭谷)·난재(蘭齋)이다. 1700년(숙종 26)에 태어났다. 1736년(영조 12)에 통덕랑(通德郞)으로 정시 문과(庭試文科)에 병과(丙科) 4등으로 급제한 후,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홍문관 수찬 등을 역임하였고, 1748년 종사관으로 통신 사행에 참여한 이후 승지, 대사간, 황해도 관찰사, 대사성, 예조 참판, 도승지,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755년(영조 31) 예조 참판이 되었을 때는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등 북도(北道)에 거주하고 있는 향화인(向化人) 자손들의 성관(姓貫)을 조사하여 성책(成册)하여야 할 중요한 사명을 맡았다. 1762년(영조 38) 사도 세자 사건 때에는 옥사와 관련하여 국문을 당하였다가 곧 풀려났으며, 1763년(영조 39) 11월에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그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공로로 국록을 받도록 배려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봉사일본시문견록(奉使日本時聞見錄)』은 원문에 저자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고 서문이나 발문 등도 붙어 있지 않으나, 내용을 보면 종사관의 기록임이 분명하므로 당시의 종사관인 조명채가 기록한 것이 확실하다. 조명채는 1747년(영조 23) 4월에 종사관으로 임명되고, 그해 11월에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하여 사폐(辭陛)하고 한양을 떠났으며, 1748년 2월 16일에 두모포진(豆毛浦鎭)을 출발해 윤 7월 12일에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듬해 윤 7월 30일에 복명하였는데, 『봉사일본시문견록』은 2월 12일 첫 출항부터 윤 7월 13일 귀환을 보고하는 장계(狀啓)를 올릴 때까지의 일기와 문견총록(聞見總錄)이다.
[형태/서지]
건·곤 2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책의 크기는 35.7×23.4㎝이다. 행자 수는 13행 29~30자이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되어 있다.
[구성/내용]
건은 2월 12일부터 5월 30일까지의 일기이고, 곤은 나머지 6월 1일부터 윤 7월 13일까지의 일기와 왜경(倭京)·강호(江戶)·대마도·총론으로 나누어 기술한 문견 총록이다. 특히 총론에서는 일본의 폭원(幅員), 분주(分州), 속읍, 병제(兵制), 선제(船制), 관복(官服), 형벌, 가옥, 음식, 물산, 화훼, 조세, 백성의 종류, 의술, 질병, 인품, 종교, 인물, 향년(享年), 지세, 기강, 관직 등 25항목에 걸쳐 자세히 기록한 뒤 간략한 사행 일정을 덧붙이고 있다.
무진 사행은 1748년 2월 12일에 첫 출항을 시도하여 3~4리를 가다가 역풍 때문에 회항하였다가, 2월 16일에 다시 출항해서 6개월간의 사행을 마치고 그해 윤 7월 12일에 부산에 돌아온다. 이 사행의 표면상 목적은 1745년(영조 21) 11월 도쿠가와 이에시게[德川家重]가 일본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의 제9대 장군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함이었다.
또 하나의 숨겨진 주요 임무는 어느 사행 때나 마찬가지이지만, 일본의 내정을 탐지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일기에도 지나가는 곳곳에서 보고 들은 바를 상세히 기록하기는 하였으나, 저자의 생각을 적은 것을 보면, 다만 일본인이 무식하고 예도를 모르고 교활하며, 시설이 지나치게 사치하며,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때로는 그들의 결례를 꾸짖었다는 것으로 시종일관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중반 통신사의 여정과 임무는 물론이고‚ 당시 일본의 지지, 역사, 풍속 등을 살피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