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1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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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分類紀事大綱 |
영어음역 | Bullyu Gisa Daegang |
영어의미역 | Record of Japanese Officials in Charge of Waegwa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부산광역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정성일 |
[정의]
일본의 대마도가 바쿠후에 보고하지 않고 내부 업무용으로 작성한 조선 시대 부산 왜관과 일본 사이의 외교 사례집.
[개설]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洲]는 자신의 저서 『교린제성(交隣提醒)』에서 대마도가 조선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책을 참고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가운데 『경국대전(經國大典)』과 『고사촬요(故事撮要)』는 조선에서 편찬된 것이며, 『선린 통서(善隣通書)』, 『조선 통교 대기(朝鮮通交大紀)』, 『분류 기사 대강(分類紀事大綱)』은 대마도에서 간행된 것이다.
『분류 기사 대강』은 대마도가 조선과 일본 사이에 있었던 외교와 무역 등 실무에 관한 것을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마도는 『분류 기사 대강』을 편찬함으로써, 먼저 조선 측이 대마도를 어떻게 대하는지 조선의 외교 태도를 고찰하고자 하였으며, 그와 함께 대마도가 조선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외교적인 대응 수단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저자]
대마도 죠센가타[朝鮮方]의 기사 대강 취립역(紀事大綱取立役)이 『분류 기사 대강』의 편찬을 맡았다. 이 가운데 제1기 편찬 책임자는 고시 쓰네에몽[越常右衛門]이며, 제2기 편찬자는 마쓰우라 산지[松浦贊治]이다. 고시 쓰네에몽은 1719년 대마도의 가로(家老)인 히라타 하야토[平田隼人]의 지시를 받아 편찬하였다. 이른바 야나가와 일건[柳川一件]으로 잘 알려진 국서 위조 사건(國書僞造事件)이 종결되어 대마도가 새로운 통교 무역 체제(通交貿易體制)를 확립해 나가려고 한 1635년 무렵부터 기록을 정리한 것이 『분류 기사 대강』이다. 기록의 하한(下限)은 1838년까지이다.
고시 쓰네에몽은 1733년 부산 왜관에서 이치다이칸[一代官]으로 근무 중에 사망하였다. 한편 마쓰우라 산지는 1703년 아메노모리 호슈의 둘째 아들[德之允]로 태어났는데, 1724년 22살 때 마츠우라 기에몽[松浦儀右衛門, 松浦蝦沼]의 양자가 되어 양부의 가업과 학문을 이었다.
[편찬/간행 경위]
『분류 기사 대강』이 편찬되기 전에는 대마도가 조선과 일본 사이에 일어난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하고자 할 때 고사 선례(古事先例)에 뛰어난 몇몇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런데 18세기에 들어서면서 대마도는 조선과 외교를 펼쳐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외교 선례(外交先例)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대마도의 이러한 변화에는 1693~1699년에 일어났던 이른바 울릉도(鬱陵島) 쟁계(爭界) 사건[일본에서는 죽도일건(竹嶋一件)이라 부름]이 대마도에게 불리하게 끝이 난 것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형태/서지]
『분류 기사 대강』은 7차례에 걸쳐서 모두 159책이 간행되었다. 각각의 수록 기간과 목차, 본편, 부록[속, 별기록]의 책 수는 다음과 같다. 제1집은 목록 1, 본편 37, 부록 2, 별기록 2, 계 42책으로, 본편은 1634~1713년, 부록은 1482~1720년, 별기록은 1718~1721년의 기록이다. 제2집은 목록 1, 본편 29, 속 2, 계 32책으로, 본편은 1713~1740년, 속은 1741~1744년의 기록이다. 제3집은 목록 1, 본편 10, 계 11책으로, 본편은 1741~1765년의 기록이다. 제4집은 목록 1, 본편 16, 별기록 4, 계 21책으로, 본편은 1765~1794년, 별기록은 1778~1787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
제5집은 목록 1, 본편 15, 계 16책으로, 본편은 1794~1812년의 기록이다. 제6집은 목록 1, 본편 16, 부록 1, 계 18책으로, 본편은 1813~1823년, 부록은 1814~1825년의 기록이다. 제7집은 목록 1, 본편 18, 계 19책으로, 본편은 1824~1838년의 기록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결본 7책을 뺀 152책이 현존하고 있다. 제1기 간행물 42책은 모두 현재 일본 국립국회도서관(國立國會圖書館)에 소장되어 있다. 제2기 이후 간행물은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에 97책[제2기 29책, 제3기 8책, 제4기 13책, 제5기 15책, 제6기 18책, 제7기 14책]이 전하고 있으며, 나머지 13책[제2기 1책, 제4기 8책, 제5기 1책, 제7기 3책]이 일본 나가사키현립쓰시마역사민속자료관에 소장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 소장본의 경우 1책의 분량이 가장 많은 것은 307매[1823~1825]이며, 반대로 분량이 가장 적은 것은 23매[1795~1812]이다. 목록은 본편에 비하여 1책의 분량이 적었는데, 가장 적은 경우 11매 정도이다.
[구성/내용]
『분류 기사 대강』은 조선과 일본 사이에 일어난 일을 거의 망라하여 적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다양하다. 가령 제1집의 경우 본편은 일본 바쿠후[幕府]의 쇼군[將軍] 가문의 교체를 조선에 알리기 위하여 파견한 사신인 대경사(大慶使)를 비롯하여[조선에서는 관백승습차왜(關白承襲差倭)라 부름], 일본이 조선에 보낸 사신(使臣)에 관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조선이 일본에 파견한 통신사(通信使)와 역관사(譯官使) 등[조선에서는 問慰行이라 부름]에 대해서도 적혀 있다. 이 밖에 표류민(漂流民) 송환, 진상물(進上物), 공사 무역(公私貿易)에 관한 기록이 수록되어 있다. 또 왜관의 역원(役員)과 시설(施設), 이전(移轉) 교섭, 조시(朝市)와 왜관에서 일어난 사건 사고 등을 둘러싸고 두 나라가 주고받은 문서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1634~1713년에 수록한 제1집의 경우 세부 항목이 111개에 이를 정도로 상세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한편 제1집의 부록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오래된 것은 1482년이다. 비록 명예직이지만 조선에서 관직을 받은 일본인, 즉 수직 왜인(受職倭人)을 비롯하여, 양국이 주고받은 외교 문서인 서계(書契)와 각종 서간(書簡), 약조(約條), 금수초목명(禽獸草木名) 등 세부 항목이 30건이었다. 『분류 기사 대강』 제1집부터 제7집까지의 내용에 대해서는 다시로 가즈이[田代和生]가 정리한 「분류 기사 대강 종합 목록」이 참고가 된다[『日朝交易と對馬藩』].
[의의와 평가]
『분류 기사 대강』은 조선인과 일본인의 접촉 과정에서 생기는 각종 마찰과 교섭 등 당시 외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안을 수록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 통교 대기』가 바쿠후 측에 알려진 것과 달리, 『분류 기사 대강』은 그 존재가 바쿠후 측에 알려지지 않은 채 대마도 내부 업무용으로 작성되고 활용되었다. 따라서 『분류 기사 대강』은 17세기 초반부터 19세기 중엽까지 조선과 일본 사이의 외교와 무역 등 외교 현안을 있는 그대로 적고 있는 점에서 사료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