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1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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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洪禹載 |
영어음역 | Hong Ujae |
이칭/별칭 | 정서(廷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구지현 |
[정의]
조선 후기 초량 왜관 신축 공사를 감독하고, 통신사행에 참여한 역관.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정서(廷瑞). 대대로 역관을 지낸 집안으로, 할아버지 홍희남(洪喜男)은 1624년(인조 2)부터 1655년(효종 6)까지 네 차례 통신사행을 하였고, 1636년(인조 14)부터 1659년(효종 10)까지 네 차례 역관사로 일본을 방문하였다. 큰아버지 홍여우(洪汝雨)도 1655년(효종 6) 홍희남과 함께 일본에 다녀왔다. 아버지는 별장을 지낸 홍여주(洪汝舟)이고, 동생은 홍중재(洪重載)·홍성재(洪聖載)이다. 부인은 이수산(李壽山)의 딸이다.
[활동 사항]
홍우재(洪禹載)[1644~?]는 1666년(현종 7) 역과에 급제하여 왜학 역관으로 활동하였다. 벼슬은 사역원 정을 거쳐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당시 왜관은 부산 두모포에 있었는데 쓰시마[對馬島] 측에서 부지가 좁고, 선창의 수심이 얕아 배를 대기 어렵다며 여러 차례 이전을 요청하였다. 이에 1675년(숙종 1) 초량에 새 왜관을 짓기 시작하여 1678년(숙종 4) 완공하였다. 이때 홍우재는 다른 역관들과 초량 왜관 건설 감독을 맡아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그 공으로 품계가 올라갔다. 1682년(숙종 8) 당상 역관으로서 통신사 종사관 박경후(朴慶後)[1644~?]를 모시고 일본에 다녀왔다.
홍우재가 통신사행 후 쓴 『동사록(東槎錄)』에 따르면 통신사 일행은 1682년(숙종 8) 5월 24일 동래에 도착하여 6월 18일 출항하였고, 10월 30일 부산에 돌아와 11월 3일 한양으로 출발하였다. 홍우재는 부산에 머무는 동안 주로 왜관을 오가며 통신사행의 구체적인 절목(條目)에 대해 논의하였다.
[학문과 저술]
통신사 당상 역관으로 일본에 다녀와서 쓴 『동사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