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000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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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依仁 |
영어음역 | Song Uiin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부산광역시 동래구 명륜동 23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손숙경 |
[정의]
조선 후기 『만력 무술안(萬曆戊戌案)』의 작성을 주도한 동래 출신의 향반(鄕班).
[가계]
본관은 여산(礪山). 호는 낙호(樂湖). 수양 대군(首陽大君)이 조카 단종(端宗)을 쫓아내고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난[1453]을 일으키자 동래로 입향한 동주(東洲) 송극명(宋克明)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송종렴(宋宗濂)이고, 부인은 김해 허씨(金海許氏)다. 동래의 여산 송씨(礪山宋氏)는 원윤공파(元尹公派)의 후손으로, 입향조의 호를 따서 동주공파(東洲公派)로 불린다.
[활동 사항]
송의인(宋依仁)[1572~1608]은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동하였고, 동주공파 여산 송씨 친족 6명도 동래성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절하여 서원에 배향되었다. 이처럼 동래에서 명망이 높은 가문이었기 때문에 송의인은 자연스럽게 1598년(선조 31) 동래 최초의 향안인 『만력 무술안』[무술 향안]의 작성에 참여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향안은 지역 양반들의 이름이 적힌 명부로, 여기에 등재되어야만 향반(鄕班)으로서 지역 사회에서 공식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향안에 등재되려면 학식과 인품을 갖춘 사람으로 향원(鄕員)[향촌 양반들의 자치 기구인 유향소의 일원]들의 인정을 받아야 했다. 무술 향안에 등재된 향반은 송의인을 포함하여 박희근(朴希根), 김정서(金廷瑞), 김우정(金禹鼎), 김사위(金士偉) 등 5명으로, 모두 동래에서 유명한 원향(原鄕) 가문 출신이다.
[묘소]
송의인의 묘는 부산광역시 금정구 오륜동 오륜대 선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