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5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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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雲精寺 三層石塔 |
영어의미역 | Three-story Pagoda at Haeunjungsa Temple in Busan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유적/탑과 부도 |
지역 |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2로 40-6 |
시대 | 고려/고려 전기 |
집필자 | 신용철 |
[정의]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우1동 2로 40-6. 해운정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 말기~고려 초기의 화강암 삼층석탑.
[개설]
해운정사 삼층석탑은 이중기단에 삼층탑신을 갖춘 석탑으로 역대조사상을 모신 불조심인전(佛祖心印殿) 앞마당에 위치해 있다.
상륜부는 결실되었으나 새로운 부재로 복원한 상태이고 나머지 부재는 대체로 원래 모습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인 석탑의 구조에서는 신라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고 비례에서는 상층기단과 초층탑신의 높이를 낮추는 변형양식을 보이고 있다.
[현태 및 구성]
석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지닌 탑이었으나 현재 노반석 이상의 상륜이 결실된 상태이다. 하층기단은 지대석과 면석, 갑석이 일체석으로 총 4매의 십(十)자형 결구로 이루어졌다. 면석에는 모서리에 우주(隅柱)와 중앙에 각 면 2주씩의 탱주(撐柱)를 새겼다. 갑석은 두꺼운 편으로 모서리쪽으로 약간의 기울기가 있으며 상면에 호각형(弧角形) 괴임을 두어 상층기단 면석을 받고 있다. 특이한 점은 상단의 각형받침에 비해 하단의 호형몰딩의 너비가 넓게 표현되었다.
상층기단 면석은 4매로 H자형 결구를 보이는데, 하층기단과 마찬가지로 모서리의 우주와 중앙에 각각 1주의 탱주를 각출했다. 상대갑석은 2매로 하단에 부연을 표현하였으며 상단의 기울기는 약하며 중앙에 2단의 각형괴임을 두어 초층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매석으로 총 6매로 구성되었다. 초층 탑신석은 4면 모두 정방형태의 문비(門扉)를 마련하였는데, 1면에만 문고리가 있고 나머지 3면은 방형틀의 형태로 구성하였다. 문비(외곽기준 가로세로 29.0×28.0cm)는 외곽에 굵은 돌대를 돌리고 내부에 별도의 구획틀을 마련하였는데, 남면으로 추정되는 1곳에만 원형의 문고리를 조각해 두었다. 문고리의 형태나 문비의 전체적 모습이 투박하고 다른 석탑의 경우 문비의 전체적인 모습이 장방형인데 비해 이 탑은 탑신의 높이가 낮아 거의 정방형에 가깝게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초층몸돌은 사방 문비의 표현으로 우주를 별도로 표현하지 않았으나 탑신부 상단 너비가 51cm인데 비해 하단의 너비는 53cm로 약간의 안쏠림을 주었다. 사리공은 초층탑신 상면에 마련하였는데, 가로세로 28.0×28.0cm, 깊이는 13.0cm로 초층탑신 크기를 감안할 때 사리공을 비교적 크게 마련하였다. 2층과 3층 몸돌은 네 모서리에 우주를 표현하였고 각층 체감이 적당한 편이다.
옥개석은 삼층 모두 하단의 받침은 4단이고 상단 2단의 괴임을 두어 위층 몸돌과 상륜부 노반을 받고 있다. 지붕의 낙수면은 완만하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가 모서리 전각부에서 살짝 반전하여 경쾌함을 주고 있다. 옥개석 처마하단의 물끊기 홈은 생략되었고 각 모서리마다 약간의 파손 결실이 있다.
상륜은 노반석만 남아 있는데, 3층 지붕돌과 한돌로 구성하였다. 노반은 낮은 형태이며 상단에 2단의 띠돌림이 있다. 현재는 노반석위에 보주형태 부재가 놓여 있으나 근래에 새롭게 만들어 추가된 부재로 보인다. 새로 복원된 보주석을 제거하면 상면에는 직경9.0cm, 깊이 5.0cm의 찰주공이 남아 있다.
[특징]
기단부를 구성하는 하층기단, 상층기단(면석과 갑석)의 부재가 4-4-2이며 탑신부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1매씩 총 6매로 정연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상하층 기단부의 탱주숫자가 1:2이며 각부의 구성요소를 생략 없이 모두 표현하여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특히 초층 탑신부에 안쏠림이 나타나며 4면에 새겨진 문비의 형태는 전통적인 문비형태에 기본을 두고 일부 변용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노반석을 3층 지붕돌과 한 돌로 처리한 방법은 신라 말부터 나타나는 소형석탑의 양식 범위안에 있음을 알려준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이 석탑은 신라양식에 기본을 두고 상층기단부의 비례의 변화와 초층 탑신은 변용 등 부재의 간략화 속에서도 전통적 석탑 양식을 따르려는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즉 이 석탑에서 나타나는 기본적인 조영방식은 기존에 널리 유행한 신라석탑의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소형화되는 경향과 그로인하여 새롭게 등장하는 변형의 요소를 함께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라석탑은 말기인 9세기 중후반 이후에 크기가 전체적으로 급속히 축소되면서 구성하는 부재의 간략화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크기의 축소에 따라 부재의 표현방법이나 비례의 변형이 두드러진다. 해운정사 삼층석탑은 상층기단부 면석의 높이에 있어 외소해 지는 비례감을 보이고 있으며 하층기단 갑석 상단의 몰딩을 넓게 표현하는 과장적인 기법을 엿볼 수 있다. 또 초층탑신은 안쏠림의 기법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기단부의 상하층 탱주숫자가 1:2로 표현한 점, 소형화되었으나 각부의 생략이 없는 점 등은 이 석탑이 신라석탑의 양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체적인 비례감각과 초층탑신의 세부표현에 있어서는 신라석탑의 양식에서 벗어나 고려초기 제작된 방식이 나타난다. 따라서 석탑의 제작시기는 신라말에서 고려초기에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초층탑신의 크기에 비해 크게 설정된 사리공의 존재이다. 사리공의 크기는 가로·세로 28.0×28.0cm로 당시 척도를 감안하면 거의 1자에 가깝다. 이처럼 사리공이 큰 이유는 소석탑 99기 혹은 77기를 봉안하기 위한 조탑행위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인정한다면 무구정경에 따른 조탑행위일 가능성이 높다.
해운정사 삼층석탑은 노반석 이상의 상륜부는 결실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부재가 완벽하고 각부의 표현도 확실하여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이어지는 석탑양식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2020년 4월 29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