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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량 필 삽살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567
한자 金斗樑 筆 -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로481번길 1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9년 5월 29일연표보기 - 김두량 필 삽살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두량 필 삽살개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성격 회화
서체/기법 종이에 수묵담채
소유자 현승훈
관리자 현승훈
문화재 지정번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1743년 어제가 기록된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의 삽살개 그림.

[개설]

1743년, 당대 왕인 영조의 필체를 볼 수 있는 개 그림으로 김두량의 현존하는 개 그림 중 유일하게 그의 이름 ‘김두량’이 기록된 작품이다. 조성 연대가 명확하고 삽살개의 극사실적 묘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모화 작품이다.

[작가]

김두량 필 삽살개를 그린 화원은 김두량이다. 자는 도경(道卿), 호는 남리(南里), 운천(芸泉)이다. 김두량의 가계는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경주김씨(慶州金氏) 화원가(畵圓家)이다. 그는 사과(司果)를 지낸 부친 김효강(金孝綱, 1663~1728)을 비롯하여 형 김두근(金斗根, ?~?), 그의 아들 김덕하(金德廈, 1751~1792), 형의 아들 김덕성(金德成, 1729~1797)과 덕성의 아들 김종회(金宗繪, 1751~1792) 진외고조(陳外高祖) 함덕남(咸德男, ?~?), 진외증조 함경룡(咸慶龍, ?~?), 조선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을 다녀온 외조부 함제건(咸悌健, ?~?)과 외숙 함세휘(咸世輝, ?~?) 모두 화원으로 활동했다.

이가환(李家煥, 1742~1801)의 『동패락송(東稗洛誦)』에 의하면 “화원가문에서 태어난 김두량은 문인화가 공재 윤두서(尹恭齋)에게 그림을 배웠고 개 그림을 잘 그렸다. 영조가 명하여 5종신토록 급록(給祿)을 주라고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김두량과 윤두서의 사승 관계를 분명이 하고 있으며, 당대의 평가를 비롯한 영조의 각별한 배려 등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김두량에 대한 영조의 애호는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이 발문(跋文)을 쓴 「고사몽룡도(高士夢龍圖)」를 통해서도 밝히고 있다. “김두량은 먹 쓰는 법이 奇古하여 족히 名手라고 칭할만하다”고 평했고, “영조가 즉위(1724)한 후 남리(南里)라는 호를 하사했다”고 적고 있다. 김두량의 주요 경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717년(숙종 43) 화사군관으로 삼도통제영에 배속, 1728년(영조 4) 분무원종공신일등으로 녹훈을 하사받았고, 후에 도화서별제(圖畵署別提)를 지냈다.

[형태 및 구성]

이 작품은 김두량이 1743년에 그린 삽살개 그림과 영조대왕이 쓴 화제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당대에 제작된 《제가명품화첩(諸家名品畵帖)》의 머릿그림이었으나 근간에 따로 떼어 족자로 장황하였고 보존상 보호 액자로 이중 표구되어 있다.

그림의 구도는 삽살개가 고개를 들고 입을 벌려 짖는 자세를 측면으로 화면에 꽉 차게 구성했으며, 약간의 경사를 두어 담묵의 태 점으로 지면을 나타냈다. 활달하면서도 묘방(卯方)이 넘치는 필치의 이 그림은 개의 표정을 실감나게 그려 귀를 대고 있으면 마치 컹컹 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또한 가는 붓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움직이는 털의 흐름을 한 올 한 올 표현함으로써 명암이 잘 드러나 있다. 개의 머리와 등 쪽은 검정 얼룩이 든 개의 옆모습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고 콧등과 코털, 눈의 생생한 묘사와 휘말아 치켜올린 꼬리에 표현된 털이 그 정밀성을 부각시킨다. 앞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발동작의 묘출(描出)은 활달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삽살개의 움직임을 잘 보여준다. 개의 짖는 입과 혀의 말린 모양새, 옆으로 접혀서 누운 귀의 형태, 바람과 마주한 바짝 선 등의 털과 높이 치켜든 꼬리 등은 개의 공격적 형상이다. 화면 상단의 접지선은 글자 행간에 맞춰 미세하게 접혀있고 이는 영조가 화제를 쓰기 위해 완성된 그림의 상단을 접은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김두량 필 삽살개는 영모화의 일종으로 한국의 전통 토종개, ‘삽살개’를 그린 그림이다. 조선 후기 『물명고(物名攷)』에 의하면 삽살개를 바독개, 더펄개, 발발이와 더불어 우리 개로 구분하고 있다. 삽살개는 ‘액운을 쫓다’라는 뜻을 지닌 한국의 전통 토종개이다.

②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72년 이동주의 『한국회화소사』를 통해서이다. 이동주는 런던 방문 당시 어느 고미술잡지에서 이 그림을 보고 오려두었다가 책을 만들 때 사용했다고 말한 바 있다. 영국에 있다고 알려졌던 이 그림은 이후 벨기에에서 일본 도쿄로 건너왔다가 다시 국내로 유입되었고, 결국 부산지역 화랑을 통해 지금의 개인 소장자에게 머물게 되었다.

김두량 필 삽살개는 원래 당대에 제작된 ≪제가명품화첩≫의 머릿그림이었으나 근간에 따로 떼어 족자로 장황하였고 보존상 보호 액자로 이중 표구되어 있다. 김두량 필 삽살개는 김두량의 대표작인 「월야산수」(1744)보다 한 해 먼저 그린 그림으로 이 시기는 영조실록에서 보이듯 왕권이 안정되고 5월 말부터 6월 초에 국가적 큰일이 없었던 달로 왕이 망중한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다만 가뭄이 들어 영조가 몸소 3차례의 기우제를 지냈고 윤4월이 있어서 음력 6월은 더위가 한창일 때로 파악된다.

④ 김두량이 그려 남긴 개 그림은 「삽살개」 외에도 「흑구도(黑狗圖)」와 「자웅견장추도(雌雄犬將雛圖)」이 전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흑구도」는 농담을 준 담묵으로 마른 나무를 거칠게 그려 풀밭에 비스듬히 누운 개를 감싸며 상단을 채웠고 그 아래 화면 중앙을 채운 검은 개는 잠결에 누가 불렀는지 정면을 향해 시선을 주며 왼쪽 앞 다리를 세우고 있다. 김두량의 사실적 표현은 이 작품에서도 잘 나타난다. 개의 움직임 따른 털의 흐름과 음영을 세세하게 그렸고 휘감겨 있는 꼬리털의 표현과 발바닥과 같은 부드러운 살결의 붓질을 구분하여 사실적인 개를 그렸다. 1969년 류복렬에 의해 처음 소개된 「자웅견장추도」는 화제나 관인(款印)이 없으나 김두량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짙은 갈색의 어미 개를 우측 화면 중심으로 두고 검은 점박이 아비 개는 풀밭에 코를 묻고는 낮게 누워있다. 좌측 하단의 새끼 개 세 마리는 강강술래 모양으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의 「삼미신(三美神)」 처럼 서로를 응시하며 동그랗게 서있다. 새끼 개 두 마리는 어미 개를 닮았고 한 마리는 아비 개의 검은 점박이를 빼다 박았다. 이 그림은 김두량의 개 그림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정치(精緻)한 털의 표현과 극사실적인 근육의 움직임은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신윤복의 「나월불폐」에서 표현된 개의 묘사방식이 조금 더 유사하다. 두 점의 그림 속 개들 모두 입을 꼭 다물고는 여유 자작한 모습들이다. 반면 김두량 필 삽살개는 살벌한 눈과 끝없이 짖어대는 입, 공격적으로 젖혀진 귀, 바짝 선 등의 털, 치켜든 꼬리 표현으로 삽살개의 분노에 찬 감정을 실감나게 그려냈다. 조선의 개 그림은 이상적이고 서정적 표현에서부터 현실적인 개의 묘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개성적인 작품들이 그려졌고 특히 김두량 필 삽살개는 음영의 표현과 정교한 묘사로 극사실적인 삽살개를 완성하였다.

⑤ 영조의 어제는 다음과 같다. "柴門夜直 是爾之任 [밤에 사립문을 지키는 것이 너의 소임인데] 如何途上 晝亦若此 [어찌 낮에 길 가운데에서도 이같이 하는가?] 癸亥 六月 初吉 翌日 金斗樑圖 [계해(1743년, 영조 19) 6월 초하루 다음날 김두량이 그림]."

[의의와 평가]

1743년 제작된 김두량 필 삽살개는 국보 제240호로 지정된 「윤두서자화상(尹斗緖自畵像)」에 표현된 관찰력과 특유의 극사실성을 개 그림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개를 소재로 한 그림은 전기에는 종실 출신 이암이, 후기에는 화원 김두량이 가장 대표적인 이들로 구별된다. 김두량은 이암의 평면적인 영모화 흐름에서 벗어나 살아있는 동물 표면의 질감과 생동감을 묘사함으로써 조선 후기 영모화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김두량 필 삽살개는 남리의 회화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이며 기준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우선 당대 왕인 영조의 필체를 볼 수 있는 영모화로 그 의미가 남다르며, 둘째 김두량의 현존하는 개 그림 중 유일하게 그의 이름이 기록된 작품이자, 셋째 조성 년대가 명확한 개 그림이다.

이 작품의 가치는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를 어렵게 환수했다는 사실에서 그 의의가 있다. 2019년 5월 29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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