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5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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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陶器 家形 明器 |
이칭/별칭 |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9호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유물/기명류 |
시대 | 고대/삼국시대 |
집필자 | 김주호 |
[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정관읍 정관중앙로 122에 위치한 정관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삼국시대 상장의례(喪葬儀禮)용 상형도기(象形陶器).
[출토 상황 및 제작 연대]
집모양 명기(家形 明器)는 기장 가동고분군 Ⅰ지구에서 확인된 목곽묘(나무덧널무덤) 내부에서 출토되었다. 부장 위치는 목곽묘의 북쪽 벽 근처 바닥면이다. 발굴 당시 집모양 도기와 함께 단경호, 컵형토기가 출토되었는데, 공반 출토유물의 형식으로 볼 때 5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적 특징]
집모양 명기(家形 明器)는 12개의 사각기둥을 평면 반원상으로 배치하고, 기둥 위에 두꺼운 반자(천장부)를 덮은 후, 그 위에 다시 맞배형 지붕을 올린 구조이다.
건물 몸체의 정면에는 3개의 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기둥 사이에는 벽(흙벽)으로 메웠다. 그리고 측면과 배후를 따라 9개의 기둥을 둥글게 배치하였는데, 각 기둥 사이는 창살처럼 띄워놓았다. 기둥은 민흘림이나 배흘림 표현 없이 위아래가 일정한 폭을 유지하고 있는데, 기둥 아래에는 초석도 보이지 않는다. 몸체 중앙(건물 내부)에는 원통 모양의 저장기가 배치되어 있으며, 그 끝은 뿔잔(각배)의 아가리 모양으로 비스듬히 돌출되어 있다.
몸체부 상단에는 반자(천장부)가 기둥머리까지 덮고 있는데, 반자 중앙에는 사각형 개구부(開口部)가 관찰된다. 기둥과 벽면의 표현이 매우 사실적임에도 불구하고, 몸체 정면과 측면 등에 출입문을 따로 표현하지 않은 점으로 보아, 반자 중앙의 개구부는 사다리를 통해 출입하던 문(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지붕은 맞배형으로, 용마루는 높게 솟아 있고, 용마루 아래에는 2개의 동자주를 세워 도리를 받치고 있으며, 도리 중앙에서 건물 뒤쪽으로 내려 걸친 서까래가 확인된다. 지붕 앞쪽(처마)은 2개의 사각기둥이 양단을 받치고 있는데, 기둥머리 위에는 주심도리로 보이는 횡부재가 표현되어 있다.
지붕의 옆쪽인 박공(牔栱) 면에는 위로 편평하게 솟은 판상의 부재가 장식되어 있으며, 중앙과 전면부 가장자리에도 닭 볏과 같이 상단이 돌기된 판상의 부재가 관찰된다. 지붕 부재의 재질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박공면과 중앙부 판재형 부재의 부착상태로 보아 판자지붕, 또는 초가지붕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의 각 기둥 외면에는 모두 송엽문(松葉文)을 시문하였고, 벽체부 전면의 벽과 반자 외측면, 박공면의 판상부재 등에는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을 연속해서 시문하였다.
이상의 집모양 명기는 두께 1cm, 지름 14~16cm 내외의 (타)원형 점토판 위에 부착된 상태이다. 점토판의 가장자리에는 지름 2cm 내외의 작은 구멍 6개가 ‘U'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구멍의 크기와 배치상태로 보아 집모양 명기를 고정하거나 부착하기 위한 착장공(着裝孔)으로 추정된다.
현재 집모양 명기는 대체로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후대의 교란에 의해 지붕 전면을 받치는 오른쪽 기둥 아래쪽이 일부 결실된 상태이다.
[집모양 명기(家形 明器)의 의의]
지금까지 국내에서 출토된 집모양 도기는 총 20여 점 정도이다. 이 중에서 출토된 유적과 유구가 명확히 알려진 사례는 본 자료를 포함해 총 7점(①경주 사라리 5호묘 출토품, ②창원 석동 고분군 다-3지구 2호 목곽묘 출토품, ③함안 소포리유적 주혈 71호 출토품, ④창원 다호리 1B호 출토품, ⑤기장 가동 고분군 출토품, ⑥김해 봉황동유적, ⑦함안 말이산 45호분) 정도이고, 나머지는 출토지가 분명치 않은 수집품들이다.
따라서 기장 가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집모양 명기(家形 明器)는 유물이 출토된 상황과 연대를 알 수 있는 소수의 자료 중 한 점이라는 점에서 관련 연구를 심화하는데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기존에 보고된 집모양 도기를 건축 구조의 측면에서 분류해보면, ①고상창고(高床倉庫)형, ②중층가옥(重層家屋)형, ③단층와가(單層瓦家)형 등 크게 3개 형식으로 나뉘는데, 본 집모양 명기는 위의 3형식 중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으며, 지금까지 출토된 집모양 도기들과는 전혀 다른 형태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출입문을 지상이 아닌 건물 상부(천정부)에 표현하고, 몸체(측면과 후면)는 살을 둘러놓은 것처럼 제작한 점에서, 건물 내부로 출입하기가 까다로운 구조임과 동시에 내부는 일상적 거주를 위한 공간이 아님을 유추해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붕마루를 높게 들어 올리고, 처마를 활주와 같이 긴 기둥으로 받쳐놓은 형태에서 건물의 권위성도 관찰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의 집모양 도기와 비슷한 시기에 일본에서도 집모양 하니와(家形埴輪)가 출현한다. 일본의 집모양 하니와는 주로 대형 고분(古墳)의 정상부에 매납되며, 여러 종류의 하니와 중에서 가장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표현된 건물의 성격은 수장(首長)의 거관(居館), 또는 신전(神殿), 제전(祭殿), 신성한 창고(倉庫) 등으로 해석된다.
한국 고대의 집모양 도기 역시 지금까지의 출토 사례로 볼 때, 고대의 각종 제의(祭儀)와 관련하여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된 상징적 기물임에 틀림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본 명기는 건물의 구조적인 특징으로 볼 때,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권위와 상징성이 강한 건축물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여러 특징으로 볼 때, 기장 가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집모양 명기는 일상적 주거 또는 생계와 관련된 시설이라기보다 제사(祭祀)・의례(儀禮) 등 특수한 목적을 위해 조성된 신라·가야지역 고유의 건축물 중 일부를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 한대(漢代)의 명기 등에서 전형(典型)이 확인되는 고상 창고나 단층 기와집 모양의 기존 출토품에 비해 그 희소성 및 조형적 가치가 더욱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매장의례는 물론 한국 고대 건축의 발전과정, 그리고 건축에 투영된 다양한 문화적 함의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자료로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2019년 4월 10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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