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542 |
---|---|
한자 | 梵魚寺 羅漢殿 釋迦牟尼佛會圖 |
이칭/별칭 |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4호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유산 |
유형 | 기관단체/사찰,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청룡동 546번지)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미경 |
[정의]
부산시 금정구 금정산 범어사의 나한전에 봉안된 대한제국기의 석가모니불회도.
[개설]
석가모니불회도는 영취산에 모여든 청중들에게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하는 광경을 주제로 그린 불화라고 하여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석가모니설법도(釋迦牟尼說法圖)라고도 한다.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불회도는 면 바탕에 채색한 나한전의 상단탱화로, 전각의 내부 중앙에 봉안되어 있다. 수화승 보응문성(普應文性),금호약호(錦湖若效) 등 16인이 1905년에 범어사 나한전의 후불도로 십육나한도와 함께 제작한 불화이다. 2018년 10월 3일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0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나한전의 석가여래 삼존상 뒤쪽 벽면에 석가모니불회도가 봉안되어 있다. 화면 중앙에는 항마인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연화가지를 든 문수보살, 오른쪽에 여의를 든 보현보살을 배치하고, 그 주변에 합장형 보살 2위,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십대제자상, 사천왕상이 외호하고 있다. 화면 하단의 묵서 화기에 따르면, 대한 광무9년(1905)에 수화사 금호약효를 비롯하여 총 16인이 관여하였고, 출초는 보응문성이 담당하였다
채색은 전체적으로 오방색을 사용한 진채(眞彩)로 색이 선명하며, 적색을 중심으로 청색, 백색, 녹색 등을 적절하게 사용하였다. 구름은 황색, 석간주, 녹색 등을 엷게 칠하여 천공의 화사한 양청색과 함께 전체적으로 색감이 밝은 편이다. 그외 불보살을 비롯해 각 존상의 의복은 옷깃을 제외하면 문양의 대부분은 생략되었고, 보살의 보관과 지물, 사천왕의 갑옷 일부 등에 금박을 사용하였다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불회도는 제작시기를 기록한 화기 부분이 온전히 남아 있어 화기를 통해 정확한 제작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작품을 제작한 출초화승 보응문성(普應文性, 1867~1954)이나 수화승 금호약효(錦湖若效, 1846~1928)는 사제지간이며,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충청도 지역의 대표적 불화승이자 한국 근대 불화계를 대표하며 마곡사파 불화를 정립한 대표 화승이다. 마곡사화파는 19세기 후반부터 마곡사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20세기 초반까지 계룡산 일대 등 충청도, 경상도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 많은 작화 활동을 남겼다
[특징]
나한전 석가모니불회도는 팔상전의 석가모니불회도와 동시기 조성된 것이다. 팔상전 후불도에 비해 본존 상호가 둥글면서 눈코입이 큰 편이고 이마가 비교적 좁다. 그 외 본존의 육계 표현이나 광배의 형태, 권속들의 복식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두 불화의 제작자가 모두 동일 수화승과 그룹에 의해 조성되었지만, 사용된 초본[草本;불화를 그리기 위한 밑그림]은 전혀 다르며, 나한전의 경우 금강산 화승 축연이 보조화승으로 추가되어 있어 그의 화풍적 영향을 짐작케 한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 나한전 석가모니불회도는 충청도 마곡사화파의 화풍이 반영된 근대기 초의 석가후불도로, 이후 경상도 지역의 불화 제작에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가치가 있다. 따라서 범어사나 나한전 석가모니불회도는 조선 말기를 지나 대한제국기인 1905년 조성된 후불도로서 가치가 평가된다.
[참고 문헌]
『범어사성보박물관 명품도록』, 범어사성보박물관, 2002.
『한국의 불화』범어사편 32, 성보문화재연구원, 2004.
『부산의 문화재』, 부산광역시, 2013.
박은경 외, 『범어사의 불교미술』, 선인, 2011.
문화재청(http://www.ch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