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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금란계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539
한자 宜寧 金蘭稧案
이칭/별칭 동안·금란계좌목
분야 역사/전통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영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8년 3월 27일연표보기 - 의령 금란계안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의령 금란계안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성격 동안
작가 지헌(止軒) 안기종(安起宗) 등
수량 12책
규격 22.7∼32.2[가로]×30.5∼49.7[세로]cm
서체/기법 필사본
소유자 부산대학교 도서관
관리자 부산대학교 도서관
문화재 지정 번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동안(洞案)으로, 인조 7년(1629 : 崇禎 2년)부터 1971년 전후까지 의령군(宜寧郡 : 지금의 경상남도 의령군)의 부산면(富山面 : 지금의 부림면)지역에서 동약(洞約·洞契)으로 실시된 금란계(金蘭稧)의 지속적인 활동 내력을 묶었으며, 2018년 3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지정된 12책.

[개설]

동안은 좌목(座目·坐目)·명안(名案)·안(案)이라고도 하며, 해당 동계(洞契·洞約)에 참여한 인물들의 성명·출생연월·본관 등이 기록되어 있다. 금란(金蘭)은 친구 사이의 두터운 우정을 의미하며, 의령군 부산면 지역에서 시행된 『의령 금란계안(宜寧 金蘭稧案)』 12책에는 인조 7년 지헌(止軒) 안기종(安起宗)이 지었다고 알려진 입의(立議)를 비롯하여 입규(立規), 그리고 참여 인물들의 성명과 화압(花押), 생존시기(屳·仙자로 생존 여부 표시)·호·거주지역·개명(改名)정보 등이 1971년 전후까지 먹으로 기록되어 있다. 입의에는 금란계 참여 인물들의 상호 부조·연대의 도모와 마을의 규약준수 등을 주요 내용으로 규정하고 있다.

[형태 및 구성]

부산대학교 소장의 의령 금란계안은 2017년 4월 경상남도 의령군 순흥안씨 탐진군파 헌납공 문중(탐진안씨)에서 부산대학교 도서관으로 기증한 일괄자료들 가운데 포함된 기록유산으로, 전체 제1책부터 제13책 가운데 제3책이 탈락되어 12책이 현존한다. 표지의 규격은 가장 작은 제1책이 22.7(가로)×30.5(세로)cm이며, 가장 큰 제10책이 30.6(가로)×49.7cm(세로)으로 다양하다. 장황은 삼침·사침·오침·칠침 안정법의 선장본이다. 앞표지에는 동안(洞案)+권차, 금란계(金蘭稧)+권차, 금란계+좌목(座目)+권차 등과 함께 시행 시기 등이 먹으로 필사되어 있으며, 제12책의 경우에는 제첨되어 있다. 표지 안은 전제가 닥종이(楮紙)에 검은 먹으로 필사되어 있다. 그러나 제2책의 경우는 개별 장마다 본문 밖의 네 면에 두 줄로 사주쌍변과 함께 본문의 각 줄 사이에 경계선인 계선을 붉은 색으로 주사란(朱絲欄)의 표시가 있으며, 제11책의 경우도 검은 색의 사주단변과 함께 계선을 표시한 오사란(烏絲欄) 형태이다. 그리고 개별 책의 표지와 면지(面紙)는 필사된 서체와 종이 종류가 각각 세부적인 차이를 보인다.

제1책은 앞표지-면지-속표지-본문-면지-뒷표지의 순서로 엮어 두었다. 앞표지에는 좌측으로부터 동안(洞案)·제일권(苐一卷)·숭정이년기(崇禎二年起) 등이 큰 글자로 묵서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인조기사년(仁祖己巳年)/ 서기(西紀) 1628년(年)/ 단기(檀紀) 3962년(年)/ 공기(孔紀) 2180년(年) 등이 작은 글자로 필사되어 있다. 면지의 뒷면에는 2행에 걸쳐 ‘숭정(崇禎) 명연호(明年号) 1628~1644/ 2년(年). 1629’라는 내용의 작은 글씨가 후대에 먹으로 보태어 쓰여 있다. 속표지에는 ‘동안’이라 묵서되어 있다. 본문은 입의(立議)-입규(立規)-좌목(座目)-입의-입규-동중좌목(洞中座目)의 순서로 필사되어 있다. 이 가운데 2종의 입의는 내용이 동일하면서 서체에서 차이를 보이며, 2종의 입규는 앞의 입규가 7조항인데 비해 뒤의 입규는 5조항이 추가되어 전체 12조항으로 되어 있다. 앞의 좌목에는 본 동약에 참여한 이사안(李思顔)을 비롯하여 22명(지우진 듯한 1명을 추가하면 23명)의 인명과 화압(花押)이 묵서되어 있으며, 인명의 다음 행에는 끝이라는 의미의 ‘제(際)’자를 이어 숭정이년시월십오일(崇禎二年十月十五日)[공사원이만승(公事員李曼勝) 화압/ 유사이부(有司李博)]이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동중좌목에는 정사민(鄭士敏)을 비롯하여 34명(성명이 가려진 1명 추가하면 35명)의 성명과 화압 및 생존 여부가 묵서되어 있으며, 마지막 성명인 이례립(李禮立)의 다음 행에 ‘제’자를 이어 ‘을유시월십팔일(乙酉十月十八日)[공사원이(公事員李) 화압/ 유사강(有司姜) 화압]의 내용 등이 묵서되어 있다. 그리고 그 다음 행에는 ’좌목‘이라는 글자가 빠져 있으면서도 이협(李協)을 포함하여 이응명(李應明)까지 6명의 성명을 이어 ’병술십일월십이일(丙戌十一月十二日) 공사원이(公事員李) 화압/ 유사강(有司姜) 화압‘의 내용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그 다음의 2행에도 이응조(李興祖) 등 2명의 성명이 묵서되어 있어 다음 장차가 탈락된 듯하다.

제2책의 경우도 앞표지에 ‘동안’이라는 큰 글자의 묵서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 작은 글자로 ‘이(二)’라는 필사되어 있다. 본문의 입의는 제1책의 내용과 동일하면서 서체에서 차이를 보인다. 입규의 경우는 제1책의 12조항 가운데 1조항을 제외한 11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마지막 행에는 ‘신해시월십일(辛亥十月十日)[공사원이석구(公事員李錫龜) 화압/ 유사이상백(有司李尙白) 화압]이 묵서되어 있다. 좌목에는 이박(李博)을 포함하여 42명의 성명이 묵서되어 있다. 그 다음 행에도 금란계의 동약에 참여한 성명과 생존여부를 시기별로 표기되어 있으며, 확인되는 시기는 경신사월이십일(庚申四月二十日)·을축이월초일일(乙丑二月初一日)·기사유월십칠일(己巳六月十七日)·신미팔월이십이일(辛未八月二十二日)·기묘팔월이십구일(己卯八月二十九日)·을유십일월이십일(乙酉十一月二十日)·병술정월이십이일(丙戌正月二十二日)·정해사월초삼일(丁亥四月初三日) 등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기묘년 8월 29일 작성된 ’동내완의(洞內完議)‘ 4조항이 묵서되어 있다.

제4책의 표지에도 ‘동안 사(四)’가 묵서되어 있으며, 그 아래 부분에 작은 글자로 ‘오육칠팔구십권합부(五六七八九十卷合部) 삼권유실(三卷遺失)’이라 표기되어 있다. 면지의 다음 장에 있는 본문에는 입의와 입규가 없으며, 좌목을 이어 ‘이의설(李義枻) 여섭(汝涉) 계미(癸未)’와 같이 성명·호 및 출생 시기가 함께 병기되어 있다. 동약의 실시 시기 가운데 확인되는 경우는 병오·계축년 등이다.

제5책의 앞표지에는 좌측 상단에 ‘동안 오(五)’가 묵서되어 있으며, 그 오른쪽 상단에는 ‘계유정월이십일(癸酉正月二十日)’이라 표기되어 있다. 면지의 다음 장부터 시작되는 본문에는 좌목을 이어 ‘안지석(安之石)[반약(磐若)/ 경신(庚申)]’이나 ‘안덕연(安德淵)[갑진(甲辰)]/ 이귀종(李貴宗)/ 안(安)’과 같이 성명·호·출생시기, 성명·출생시기, 성명, 성씨 등의 형태로 함께 기록되어 있다. 확인되는 참여시기는 계유(1813)·무인(1818)년 등이다.

제6책의 앞표지는 ‘동안 육(六)’이 묵서되어 있으며, 면지 다음 장의 본문에는 좌목을 이어 ‘이의즙(李義楫)[용보(用甫)/ 정묘(丁卯)]’, ‘선(屳·仙) 이의모(李義模)[성범(聖範)/ 정묘(丁丑)]’, ‘안보석(安補石)[신유(辛酉)]’ 등과 같이 성명·호·출생시기, 생존여부 등의 형태로 필사되어 있다. 그리고 동계의 실시가 확인되는 경우는 무인·무자년 등이다.

제7책의 앞표지는 ‘동안 칠(七)/ 계해십이월초십일(癸亥十二月初十日)’이 묵서되어 있으며, 면지의 다음 장에 있는 본문에는 좌목을 이어 성명·호·출생시기, 성명·출생시기, 성명, 성씨 등과 같은 형태로 표기되어 있다. 동계의 실시시기는 계해(1863)·갑자·을축·임신년 등이 확인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완문(完文)’이 필사되어 있다.

제8책의 앞표지 좌우에는 ‘금란계(金蘭稧) 팔(八)/ 무인십이월십삼일(戊寅十二月十三日)’이라 묵서되어 있으며, 면지의 다음 장에는 좌목을 이어 성명·호·출생시기 및 생존여부, 성명·출생시기, 성명, 성씨 등과 같은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동계의 실시 시기는 무인(1878)·기묘년 등이 확인된다. 좌목의 다음에는 을묘년 10월과 경진년 11월에 각각 작성된 2종의 완문이 필사되어 있다.

제9책의 앞표지 좌우에는 ‘금란계 구(九)/ 임오십일월이십육일(壬午十一月二十六日)’이라 묵서되어 있으며, 면지의 다음 장에는 좌목을 이어 성명·호·출생시기 및 생존여부, 성명·출생시기, 성명, 성씨 등과 같은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동계의 실시 시기는 임오(1882)·계미·병술년 등이 확인된다.

제10책의 앞표지 좌우에는 ‘금란계 십(十)/ 정해십일월삼십일(丁亥十一月三十日)’이라 묵서되어 있으며, 면지의 다음 장에는 좌목을 이어 성명·호·출생시기 및 생존여부(仙자의 여부로 표시), 성명·출생시기, 성명, 성씨 등과 같은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동계의 실시 시기는 정해(1887)·경인년 등이 확인된다.

제11책의 앞표지 좌우에는 ‘금란계 좌목(座目)/ 십일(十一)/ 갑오십이월 일(甲午十二月 日)’이라 묵서되어 있으며, 뒷표지에는 ‘십일권합부(十一卷合部)’라 필사되어 있다. 면지의 다음 장에는 좌목을 이어 성명·호·출생시기 및 생존여부, 성명·출생시기, 성씨와 같은 형태로 필사되어 있다. 동계의 실시 시기는 갑오(1894)·경자·무신년 등이 확인된다. 좌목의 다음에는 완문과 함께 을미년·무술년 11월에 작성된 2종의 완의문(完議文) 및 시기 미상의 3종 완의문 등이 필사되어 있다.

제12책의 앞표지 좌측 상단에는 감지에 ‘금란계 좌목’이라 묵서하여 제첨(題簽)되어 있으며, 그 아래와 좌측 상단에는 작은 글자로 ‘십이(十二)’ 및 ‘기미십일월 일(己未十一月 日)’이라 필사되어 있다. 면지의 다음 장에는 좌목을 이어 성명·호·출생시기 및 생존여부, 성명·출생시기, 성명(또는 성씨)·거주지명+댁(宅) 등과 같은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동계의 실시 시기는 기미(1919)·신미·무인·무자·을미·계묘년 등이 확인된다. 좌목의 다음에는 갑진년 11월에 작성된 완문도 필사되어 있다.

제13책의 앞표지 좌우측에는 ‘금란계 좌목 십삼(十三)/ 신해이월 일(辛亥二月 日)’이라 필사되어 있다. 면지의 다음 장에는 ‘좌목(座目)’을 이어 성명·호·출생시기 및 생존여부, 성명·출생시기 등과 같은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동계의 실시 시기는 신해(1971)·신사·병신·정사·기유·갑자년 등이 확인된다. 병신년의 좌목 다음에는 정미년 11월에 작성된 완문도 필사되어 있다.

[특징]

의령 금란계안 12책은 지금의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일대에서 실행된 동약을 1629년 이래부터 1971년 전후까지 300년 이상동안 지속적으로 기록한 동안이다. 제3책이 현존하지 않고 빠져 있으나, 현재까지 남아있는 12책은 수리의 흔적이 없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좌목에는 금란계에 참여한 다양한 인물들의 정보가 담겨져 있다. 생존시기와 호 및 거주지역, 그리고 개명(改名)정보 등 다양한 정보가 표기되어 있으며, 지역사회를 주도적으로 운영한 성씨집단의 기본정보도 담겨져 있다. 동약을 주도한 성씨 집단은 탐진 안씨를 비롯하여 철성·전의·인천 이씨, 청주한씨, 하·정(鄭)·김·강(姜)·진(陳)·문·권씨 등이며, 제1책의 경우는 이씨가 32명, 한씨가 10명, 정씨가 7명, 안씨가 6명, 김씨가 4명, 하·진씨가 각각 2명, 강·문씨가 각각 1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부산대학교 도서관 소장의 의령 금란계안 12책은 일부 내용의 탈락과 결권 1책(책3)이 있지만, 17세기 초기부터 20세기까지 지금의 의령군 부림면지역에서 시행된 동약을 기록한 동안의 필사 원본을 모아 엮은 선장본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다양한 종이 종류의 제작기술과 공급형태, 서체 등을 진단할 수 있는 원천자료로서의 역사·문화적인 가치를 가진다. 특히 300여년 동안 해당 지역사회에 생활하면서 향촌사회의 운영을 주도한 조직체계 및 운영형태와 함께 해당 인물들의 실체, 인적 연계망, 거주공간, 출신성분, 개명(改名)실태, 당대 역사인식, 그리고 주도층의 성씨집단 등 다양한 역사적인 사실을 밝힐 수 있는 핵심적인 원천자료이기도 하다. 특히 이 필사본은 현존하는 유일본이므로 희소성에서도 상징적 가치를 확보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로써 2018년 3월 27일에는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 문헌]

『의령 금란계안(宜寧 金蘭稧案)』(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1호 : 부산대학교 도서관 소장본).

안혜정(南慧貞), 「의령지방 洞契에 관한 연구-寒泉洞案과 金蘭契案을 중심으로-」, 경상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문화재청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유산 통합검색.

의령 『금란계안』 사진자료

전체 12책(3책 누락)제1책 앞표지 제1책의 5장(앞면)과 4장(뒷면)금란정(金蘭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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