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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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元帥銘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생활·민속/생활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 (부민동 2가)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가영 |
[정의]
부산광역시 서구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에 제작된 원수급 장수의 투구와 갑옷 어깨부분에 부착되는 용모양의 견철(肩鐵).
[개설]
1970년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서 동시에 구입한 갑주 유물로 가죽에 옻칠한 투구 1점과 갑옷에 부착했던 좌우 어깨장식 1쌍 2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갑옷은 구입 당시부터 포함되지 않았다.2017년 7월 19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및 구성]
투구는 머리가 들어가는 투구감투, 위쪽의 정수리장식, 아래쪽의 드림까지 크게 3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투구감투는 부채꼴 모양의 가죽 4장을 S자로 완만하게 구부리고 원형이 되도록 연접시킨 후 검정색 옻칠[훅칠(黑漆)]을 했다. 4조각이 벌어지지 않도록 앞, 뒤, 양 옆에 세로로 긴 금속띠를 대고 작은 못을 박아 연결하고, 위에는 반구형 뚜껑을 덮어씌우고, 아래에는 가로로 긴 금속띠를 둘러 고정시켰다. 투구는 금빛이 나는 황동(黃銅)으로 장식하였다. 투구감투의 앞면 좌우에는 용 2마리를, 뒷면 좌우에는 봉황 2마리를 서로 마주보도록 배치하고, 세로와 가로의 금속띠, 뚜껑에는 봉황, 꽃, 만(卍), 당초(唐草), 구름 모양을 조각하였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앞면의 용은 비늘과 갈기를 섬세하게 새기고 벌린 입 사이에는 붉은색 옻칠[주칠(朱漆)]을 채워 역동감이 강하다. 뒷면의 봉황 역시 깃털과 꼬리를 섬세하게 표현하여 조형성과 완성도가 높다. 세로 금속띠에는 여의두, 칠보문을 조각하고 3등분하여 원형을 투조했는데 위쪽 원에는 꽃을, 아래쪽 원에는 만(卍)이라는 글자 모양을 조각하고 바깥에 붉은색 옻칠을 채워서 화려함을 더했다. 뚜껑에는 연꽃과 주작, 현무, 용, 호랑이의 사신(四臣)을 투조하고 뚜껑의 아래쪽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여의두문이 달려있다. 가로로 두른 금속띠에는 영지를 입에 물고 있는 봉황과 연꽃, 용, 여의두와 꽃무늬를 투조하였고 바탕은 붉은 색으로 장식했다. 가로 금속띠 아래쪽에는 무늬가 투조된 차양이 달려 있었으나 현재는 파손되었다. 그 아래쪽의 이마가리개는 눈의 모양을 따라서 곡선으로 파져 있다. 좌우로 용이 마주보며 여의주를 향해 입을 벌리고 있고 정중앙의 미간 부분에는 원형 테두리 안에 '元帥(원수)'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마가리개의 양쪽 옆으로는 구름과 물결, 파도가 표현되어 있으나 오른쪽 부분은 후대에 다소 거칠게 보수된 상태이다.
투구감투 위쪽의 정수리장식은 삼지창, 구슬 모양의 장식, 긴 원통형의 간주(幹柱)로 구성된다. 정수리장식은 간주부분을 분리하여 따로 보관하다가 착용할 때 끼워서 결합하였다. 삼지창과 구슬 장식 아래 붉은색 술인 상모(象毛)가 달려 있었으리라 추정되지만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구슬 장식에는 꽃과 넝쿨식물을 정교하게 투조했고 간주 아래쪽 뚜껑과 연결되는 부분도 꽃과 마름모 모양으로 선을 새겼다.
투구감투 아래쪽의 드림은 귀와 목을 보호하기 위해 3장이 달려 있는데 그중 왼쪽 옆드림만 전체가 남아 있고 오른쪽 옆드림과 뒷드림은 찢어져서 윗부분만 남아있다. 드림에는 규칙적인 간격으로 두정(頭釘)이 박혀 있다. 원래 두정은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철이나 가죽으로 만든 작은 갑옷미늘 조각, 즉 갑찰(甲札)을 옷감에 고정하는 머리가 둥근 못이다. 그러나 이 투구 유물은 붉은색 겉감과 푸른색 안감 사이에 갑찰은 없이 두정만 있으며, 조선 후기 갑옷과 투구 중에는 이와 같이 갑찰이 없는 유물도 종종 발견된다.
견철은 갑옷의 어깨부분에 놓여서 무게중심을 잡는 동시에 충격을 막는 장치이다. 낮은 군사 계급의 갑옷 견철은 단순한 일자로 만들어진 것도 있는 반면 장관급의 갑옷에는 용(龍) 모양으로 견철을 만들어 착용자의 위용을 높였으며, 용머리를 바깥으로 향하여 좌우대칭으로 부착하였다. 이 유물은 황동으로 용의 얼굴과 몸에 못을 통과시켜 움직일 수 있도록 하였다. 얼굴에는 좌우 턱에 못을 박아 위턱과 아래턱이 움직이도록 하였고, 몸은 앞쪽 1/4부분 지점에 못을 박아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갑옷의 활동성을 유지하였다. 머리부터 꼬리 끝까지 비늘을 일일이 새기고, 눈썹, 수염, 갈기도 한 올 한 올 정성스레 조각하였다. 현재 유물은 금속부분만 남아 있는 상태여서 부착방법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견철을 옷감에 직접 달면 마찰에 의해 찢어지므로 가죽 받침에 먼저 부착하고 이 가죽받침을 바느질로 갑옷의 어깨부분에 연결하였다.
[특징]
투구의 가장 큰 특징은 이마가리개 중앙 원형 안에 '元帥(원수)'가 새겨져있는 점이다. 이마가리개는 아무런 무늬가 없는 것부터 원형 백옥판에 용을 투조한 것까지 다양한 종류가 있으나 이처럼 '元帥(원수)' 혹은 '元富(원부)'라는 신분이 새겨진 투구는 흔하지 않다. 용의 발톱이 3개인 삼조룡(三爪龍)으로 장식된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갑주에 장식된 용은 발톱 수에 따라 삼조룡, 사조룡, 오조룡까지 있는데, 이 유물은 투구감투 앞면의 한 쌍의 용장식, 이마가리개의 용장식 모두 삼조룡으로 장식하였다.
견철 역시 용 형태로서 두 마디로 나눈 후 못으로 결합하여 움직임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였다. 용모양의 견철은 장수급 갑옷에서 흔히 발견되는 부속구이지만, 다른 갑옷의 견철에 비해 길이가 짧고 두 마디로만 나뉜 점이 특징이다. 길이 방향으로 구부러진 몸통의 완만한 곡률도 일반적인 견철과는 차이가 있다.
[의의와 평가]
동아대학교 석당박물관에 소장된 투구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장관용 투구로서, 옻칠이 벗겨지고 차양과 드림이 파손되는 등 보존상태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정확한 신분이 새겨진 투구는 국내와 해외 유물을 전부 합쳐도 몇 점 되지 않아 희소성이 있다. 비록 갑옷은 전해지지 않지만, 갑옷의 어깨 부분에 부착한 견철은 용 형태로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어 투구 장식과 함께 당시 갑주 제작방식과 기술의 정도를 알려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