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219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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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梵魚寺 高僧眞影 |
이칭/별칭 | 고승 진영,범어사 고승 영탱,범어사 고승 영정 |
분야 |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로 250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미경 |
[정의]
부산광역시 금정구 범어사에 전하는 조선 후기의 범어사 역대 고승들을 그린 진영(眞影).
[개설]
고승(高僧) 진영(眞影)은 역대 조사나 고승들의 모습을 그린 초상화를 말하며, 영정(影幀)이라고 한다. 진영이라 함은, 대상 인물의 본질인 진(眞)과 겉모습을 형상화한 영(影)을 합친 말로써, 대상의 형체만을 옮겨 놓는 것이 아니라 정신세계까지도 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 불화와 마찬가지로 진영도 종교화로서 조사신앙(祖師信仰)의 예배 대상이며 퇴색했거나 훼손되었을 때에는 다시 옮겨 그리게 되어 원본을 참조해 다시 옮겨 그린 이모본(移模本)들이 많다. 이런 연유로 제작 연대가 올라가는 현존 작품을 접하기는 쉽지 않다.
범어사 고승 진영은 창건주인 의상대사(義湘大師)를 비롯한 역대 주지와 고승들의 진영 40여 점이 전하고 있으며 모두 조선 후기에 제작된 것이다. 조선 전기에는 불교계의 위축으로 진영 봉안도 뜸해지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의 양란 뒤에는 폐허된 사원이 복구되면서 다시 활발해졌다. 봉안할 수 있는 장소는 사찰의 조사당(祖師堂) 또는 진영각(眞影閣)으로 불리는 전각에 별도로 모셔진다.
[형태]
범어사 고승 진영의 화면은 모두 단독의 전신상 형식으로 면바탕에 채색한 것이다. 크기는 세로 90㎝에서 가로 110㎝ 전후이고, 조성 시기는 18세기 후반부터 근대기까지 제작된 작품으로 파악된다. 그 중 의상대사 진영의 경우 1767년(영조 43)이라는 기년명과 함께 수일(守一)이라는 화승의 화풍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사명대사(四溟大師), 원효대사(元曉大師), 해송당초영대사(海松堂草英大師), 해운당민오대사(海雲堂敏悟大師)의 진영은 화기는 남아 있지 않지만, 표현 양식상 19세기 경 경상도 일대에서 제작된 사불산화파 화승의 화풍과 유사하다.
형식에 있어서는 의자에 앉은 전신 의자상(倚子像) 아니면 바닥에 가부좌한 평좌상(平座像)으로 정좌하여 엄격하고 고요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자세는 신체의 각도에 따라 측면상에 왼쪽 얼굴을 보인 좌안 7, 8분면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의자상은 평좌상에 비하여 앞선 시기에 나타나는 보편적인 형식으로 18세기 후반의 의상대사 진영을 비롯하여 19세기 경의 원효대사, 사명대사, 초영대사, 민오대사 진영이 여기에 속한다. 의자상은 의자에 발을 늘어뜨려 발판에 얹은 형식과 의자 위에서 가부좌한 형식이 있고, 평좌상은 돗자리나 방석을 깐 바닥에 가부좌한 상과 등받이가 표현된 바닥에 가부좌한 상으로 구분한다. 범어사에는 의자상보다는 평좌상 형식이 3/2를 차지한다.
배경은 벽면과 바닥을 구분한 상하 2단 구도로 상부 벽면에는 연속 문양을 반복하여 표현하고, 바닥에는 화문석 돗자리가 놓여져 있다.
[특징]
범어사의 고승 진영 40여 점은 대부분 화기를 갖추고 있지 않지만 의상대사 진영이 유일하게 1767년이라는 기년명과 수일이라는 화승이 밝혀져 있어 당시 화승과 화풍을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나머지 진영들도 형태상 단독의 전신상 형상과 도식화된 바닥 및 벽면의 이단구도 등에서 19세기에 주로 나타나는 고승 진영의 형식을 따르고 있어 제작 시기는 19세기경으로 추정하며, 19세기 고승 진영의 연구 및 화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의의와 평가]
범어사는 양산의 통도사, 합천의 해인사와 함께 경상도의 3대 거찰로서 대규모의 진영이 현존하고 있다. 40여 점에 이르는 범어사 고승 진영은 조선 후기의 화풍을 다양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들의 화풍과 양식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어, 조선 후기 고승 진영에 관한 시대와 지역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18년 1월 31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