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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여지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219518
한자 大東輿地圖
분야 지리/인문 지리,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부산광역시 금정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기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8년 1월 31일연표보기 - 대동여지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대동여지도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
성격 지도
작가 김정호
규격 6.7m×4.0m
소유자 부산대학교
관리자 부산대학교 도서관
문화재 지정 번호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정의]

부산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대동여지도 신유본 판본.

[개설]

대동여지도는 1861년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목판본으로 제작한 대축척조선전도로, 조선 시대 고지도 발달에서 정점에 있는 지도이다. 동양 전통의 지도 제작 방식인 방안도법으로 만들어졌으며 22첩으로 구성된 분첩절첩식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들을 이어 붙이면 약 6.7m×4.0m의 크기가 된다. 축척은 약 1/162,000∼1/216,000으로 학자들마다 견해가 다르다. 이는 미터법으로 환산한 전통적인 측도의 거리 차이와, 고지도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지리 정보의 왜곡에서 비롯된다. 지도 채색은 목판 간인 후 가채한 것이다. 현재 국내・외에 50여 점 이상의 판본이 남아 있으며, 이들은 첩의 구성뿐 아니라 채색 방법, 표장의 장황 형태가 다르다. 부산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표장제가 ‘대동도’ 이며 「도성도」가 필사로 그려져 있어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편찬 및 간행 경위]

대동여지도는 오랜 시간에 걸쳐 지리 정보의 수정과 보완을 거쳐 만들어진 지도이다. 조선의 고지도는 18세기에 고을 단위의 지도가 제작되면서 비약적인 발달을 하였다. 이 중 1770년(영조 46)에 신경준(申景濬)[1712~1781]이 제작한 20리 방안 군현지도는 대동여지도의 바탕이 되었다. 18세기 『동국팔로분지도』[성신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등의 도별도 제작을 거쳐 19세기에는 대동여지도와 유사한 필사본 대축척조선전도가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조선도』[26첩, 일본 오사카부립도서관 소장), 『청구도』[2책・4책,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 외], 『동여』[14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동여지도[18첩, 국립중앙도서관 소장]가 이에 해당된다. 이들 지도에 담긴 지리정보는 목판본으로 제작하기 위해 22첩으로 재구성되어 1861년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졌다. 동일한 내용을 필사본으로 그린 지도로 『동여도』[23첩,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외]와 『대동방여전도』[22첩, 서울대학교 규장각 소장]가 있다. 이 중 『동여도』는 방면 지명이 추가되어 있다. 김정호는 목판 제작을 위해 전국을 남-북 22층으로 나눈 후 각 층을 30.3×20.0㎝ 크기의 면으로 구성하였으며, 2면을 단위로 목판의 양면에 판각한 후 이를 인출하여 연결하였다. 지도 전체 면수는 총 227면으로 현재 남아 있는 목판[국립중앙박물관 11매, 숭실대학교 박물관 1매]의 내용을 볼 때 약 55매 내외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 및 서지]

대동여지도 판본 유형은 신유본[1861]과 갑자본[1864], 이를 모사한 필사본, 목판본을 제작하기 그린 필사본으로 구분된다. 부산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이중 신유본에 해당된다. 지도는 오동나무 상자에 보관되어 있으며 22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첩은 4~16면으로 되어 있으며 각 첩의 제1면에 날인된 도서등록인에는 '1964.8.17'이 찍혀 있어 소장 시기를 보여준다. 첩의 표장은 능화판 무늬의 담청색 한지로 장황되어 있다. 각 표장의 좌상 부분에 ‘大東圖(대동도)’와 첩 순서인 ‘一(일)’부터 ‘二十二(이십이)’가 쓰여 있고, 제1첩에는 ‘共二十二(공이십이)’가 적혀 있다. '대동도'는 다른 판본에 나타나지 않는 유일한 표제이다. 일부 표장의 경우 충해로 인해 결실 흔적이 있으며 일부 첩에서는 표장과 내지에 터널형의 충해가 있다. 일부 결실 부분은 보수되어 있다. 제1첩의 「지도유설」[제7~10면], 「도성도」[제11~12면], 제2첩의 「전국통계표」는 필사로 되어 있으며, 종이 재질과 채색 안료에서 다른 면과 차이가 있다. 이는 지도를 개장할 때 새롭게 제작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지도를 인쇄한 먹색의 농도는 면마다 편차가 있으며, 제5첩의 일부에는 간인 후 밀려서 번진 먹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구성 및 내용]

제1첩은 간기 등 지도정보와 함께 축척, 범례를 비롯하여 한양을 그린 지도가 수록된 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면은 비어 있는 면이며 이어서 지도표지-방안표-(함경도)경원ㆍ온성ㆍ종성 지도-「지도표」-「지도유설」-「도성도」-「경조오부도」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신유본 판본의 일반적인 형태와 동일하다. 제2면의 지도표지에는 지도제인 ‘大東輿地圖(대동여지도)’, 간기인 ‘當宁十二年辛酉(당저십이년신해)’와 함께 지도 제작자 정보로서 ‘古山子 校刊(고산자 교간)’이 쓰여 있다. 고산자는 김정호의 호이다. 제3면의 방안표에는 2.5㎝의 크기의 정방형 모눈이 세로 12개, 가로 8개의 형태로 그려져 있다. 좌 상단에는 ‘每方 十里(매방십리)’, ‘每片 從一白二十里 橫八十里(매편 종일백이십리 횡팔십리)'가 쓰여 있어 각 면에 그려진 면적의 실제 크기를 나타낸다. 이 방안표는 축척과 함께 지도가 근거한 도법의 내용을 보여준다.

제4~6면에 그려진 지도에는 조선 강역의 최북단에 위치한 경원부・온성부・종성부의 지리 내용을 담고 있다. 군현 경계는 판각된 점선 위에 황색 실선으로 표현하였으며, 하천과 바다는 연한 청색으로 묘사하였다. 겹선 위에 청색으로 가채된 두만강 유로가 이 지역을 감싸고 흘러 중국과 국경과 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연안에는 봉수와 진보가 상세히 그려져 있어 방어의 요충지임을 묘사하였다. 지도에서 겹선으로 묘사된 유로는 뗏목이나 배가 다닐 수 있는 하천을 그린 것이다. 읍치와 관방을 연결하는 도로는 실제와 다르게 직선 형태로 그려져 있고 그 위에 10리 간격으로 점이 찍혀 있어 장소간의 거리를 보여준다. 지도상에 표현된 간격은 일정하지 않아, 평야지대의 경우 방안표의 크기와 동일하게 2.5㎝로 되어 있으나 산간에서는 매우 짧다. 이는 도로가 가파르거나 굽어 있음을 의미하다. 등고선 대신 이와 같이 지형 지세를 표현한 것은 지도 이용에 편리를 주고자 한 것이다.

제6면의 「지도표」는 지도의 범례를 나타낸 것이다. 영아, 읍치, 성지, 봉수 등 14개 항목에서 성곽의 유무 등을 반영하여 22종의 기호를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지도표」로 지명의 후부 요소 기재를 생략할 수 있어 동일한 지면에 더욱 많은 지리정보를 수록할 수 있다. 부산대학교 도사관 소장본의 범례 색채는 영아(營衙)와 진보, 능침, 봉수는 적색, 읍치와 역참, 목장 등은 황색으로 가채하였다.

제7~10면에 필사로 쓰여진 「지도유설」에는 국가 경영에서 지도의 중요성, 동양의 지도 제작과 지리정보 묘사 방법, 『문헌비고』에 담긴 조선 강역의 내용을 수록하였다. 내용은 목활자본으로 제작된 다른 판본과 동일하다. 그러나 ‘文獻備考豆(문헌비고두)’[‘文獻備考云(문헌비고운)’의 오류]와 ‘以北新義州(이북신의주)’[‘自北新義州(자북신의주)’의 오류]의 내용은 국사편찬위원회 소장본과 동일하여 모본이 된 판본의 추정을 가능하게 한다.

제11~12면에 필사로 그려진 「도성도」는 목판본과 유사하나 크기를 약간 축약하여 그렸다. 채색은 백악산 등 산지는 회색, 청계천 등의 물길은 청색, 도로와 성곽은 적색, 왕궁은 황색으로 가채하였다. 그러나 사용한 물질은 화학 안료로 추정되어 후대에 모사되었음을 보여준다. 또한 ‘澄漕坊(징조방)’[‘澄淸坊(징청방)’의 오류], ‘慶華坊(경화방)’[‘慶幸坊(경행방)’의 오류] 등의 지명은 모사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를 보여준다. 제13~14면의 「경조오부도」에는 목판본 위에 일부 산줄기를 먹으로 덧칠하고, 지도제 중 ‘京兆(경조)’가 필사로 쓰여 있다. 도성 내부는 황색으로 칠하였고, 도로는 적색으로 가채하였으나 수준은 높지 않다. ‘貞陵(정릉)’, ‘孝昌墓(효창묘)’, ‘宣禧墓(선희묘)’에 묘사된 적색 표시는 소장자가 추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제2첩에는 두만강 하류의 삼각주로 조선의 영토였던 녹둔도를 비롯하여 함경도의 경흥부, 회령부, 무산부와 평안도의 강계부 북쪽 일대가 그려져 있다. 여백의 제9~10면에는 필사로 쓰여진 「통계표」가 있다. 한양과 팔도의 주현, 영아, 진보, 산성, 봉수, 역참, 방면과 경지면적, 호구수, 군총, 목장, 창고, 곡총 등의 통계가 담겨 있으며 내용은 목판본과 동일하다.

제3첩부터 제22첩까지는 팔도의 지리적인 내용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 중 제18~19첩에 부산의 동래부 일대가 그려져 있다. 지도에 묘사된 내용은 실제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하천 유로 묘사에서 수영강 본류의 일부가 생략되어 있으며 별도의 하천이 동쪽 해안으로 유입하고 상류에 사천 지명이 기재되어 있다. 이는 수영강과 온천천을 서로 다른 하천으로 인식한 오류에 기인한다. 동천의 경우 부산포가 아닌 남내포로 유입하고 있으며 부산포로는 다른 소하천이 그려져 있다. 지명 표기도 실제와 다른 위치에 기재된 경우가 많다. 초량왜관이 부산진의 서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쪽에 있으며, 개운포도 실제 위치와 다르다. ‘감동포’는 구포의 옛지명이나 남내포 유입 하천의 상류인 내륙에 기재되어 있다. 수영천 우안에 있어야 할 좌수영 지명은 좌안에 기재되어 있다. 한편 이들 내용 중 일부는 모사본[영남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에서 수정되기도 한다.

부산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의 내용 중 함경도 장진 일대의 황초령[제6첩 5면], 충청도 보은 귀암산[제15첩 3면], 경기도 강화도 세초섬[제13첩 5면], 함경도 고원의 통달역[제9첩 1면] 일대에서 다른 판본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는 대동여지도 목판의 수정에 기인한 것으로, 이들 내용을 종합하면 부산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신유본 중 비교적 초기본에 해당한다.

[의의와 평가]

대동여지도는 제작 당시인 1861년의 역사지리를 상세하게 그린 지도로서 당시 공간의 모습을 복원하는데 필수적인 지도이다. 특히 20세기 일제 강점기를 거쳐 분단에 이르면서 왜곡 변형된 국토의 원형을 다시 찾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신유본, 갑자본, 모사본 등 약 50여 점이 남아 있는 것은 당시 이 지도가 실용성을 바탕으로 사회에 널리 보급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들 판본들은 지도의 구성과 체제, 채색 방법 등이 서로 다르고 일부 판본에서는 목판의 수정 흔적이 있다. 이들은 당시 지도가 제작자로부터 소비자로 유통되는 모습과 함께 지도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김정호의 개인적인 노력을 보여준다. 부산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도성도」 등 일부 내용이 필사로 그려지는 등 다른 판본에서 나타나지 않는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당시 지도에서 지리 정보가 편집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2018년 1월 31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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